[현장진단]아파트 숲이 한강변 점령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서울의 상징인 한강이 아파트 숲에 파묻히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지나가면 남산과 관악산은 아파트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고 강변의 볼거리는 아파트가 전부일 정도다. 최근 수년간 강변의 저층 아파트와 단독주택지역이 잇따라 고층 고밀도 아파트로 재개발되면서 아파트 주민들만 한강의 경관을 즐기는 상황이 돼 버렸다. 》

▼실태▼

본보 취재진이 7일 유람선을 타고 한강의 성산대교와 잠실대교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며 강 양쪽의 조망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구간에서 아파트만 눈에 들어왔다.

일단 성산대교에서 서강대교까지는 아파트 재개발이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남산의 모습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였다.

그러나 최근 재개발된 마포지역과 원효대교 한강철교 구간에서는 점점 아파트가 늘기 시작해 남산의 모습이 아파트에 대부분 가려졌다. 마포대교 인근의 강변한신아파트 옆과 원효대교 바로 옆으로 간신히 남산이 보일 뿐이었다.

특히 한강철교를 지나 이촌동 지역에 다가가자 아파트가 강 전면을 가려 남산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산의 서울타워 꼭대기만 겨우 보였다.

동작대교를 지나자 강북쪽은 아파트가 줄어들었지만 강남지역은 아파트로 완전히 뒤덮였다. 구반포 지역의 저층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 남쪽 관악산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반포대교에서 영동대교를 지나 청담대교에 올 때까지도 아파트 이외에는 거의 다른 풍경을 볼 수 없었다. 강북쪽의 경우 옥수동 금호동 지역은 산자락에 아파트를 세워 마치 절벽 위에 거대한 성이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취재진이 한강 북쪽과 남쪽 하안에 솟아 있는 아파트 동수를 세어본 결과 △성산대교∼서강대교는 강북에 1개동(건설 중), 강남에 26개동 △서강∼마포대교는 강북 22개동, 강남 1개동 △마포∼원효대교는 15개동, 10개동 △원효∼한강철교는 9개동, 5개동 △한강철교∼동작대교는 27개동, 30개동 △동작∼반포대교는 9개동, 9개동 △반포∼한남대교는 3개동, 33개동 △한남∼동호대교는 8개동, 12개동 △동호∼성수대교는 3개동, 14개동 △성수∼영동대교는 5개동, 19개동 △영동∼청담대교는 2개동, 7개동 △청담∼잠실대교는 9개동, 2개동이 있었다.

결국 강 바로 옆에 서 있는 아파트 동수만 280여개, 그 인근의 동수까지 합치면 350개가 훨씬 넘었다. 여기에다 아파트 골조가 한창 올라가고 있는 공사장도 10여곳이나 됐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서울시 구간의 한강 연접지역의 60% 가량이 아파트 등 주거용지로 개발돼 있다.

▼대책▼

한강변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60년대 말부터. 69년 주택공사가 용산구 이촌동 모래톱을 매립해 ‘맨션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한강변에는 우후죽순처럼 아파트가 들어섰다. 특히 92년 한강변의 용적률을 300%에서 400%로 올리면서 재건축 아파트들이 고밀도 고층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97년 한강변의 조망권을 중시해 용적률을 300%로 다시 낮추고 차폐도(건물이배경을 가리는 정도) 기준을 강화했지만 종합적인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한 구청 관계자는 “시가 한강변의 조망권을 살려야 한다는 원칙은 세워놓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관리 지침이나 계획을 내놓은 적은 없다”며 “아파트 건축 신청이 들어오면 통상 관례대로 승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용산구 한남동, 성동구 옥수 금호동, 광진구 광장동 자양동 일대 한강변의 조망권을 중점 보호할 방침이지만 이미 아파트가 너무 많이 들어선데다 재개발이 진행중인 곳이 많아 종합적인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불만▼

현재 한강변 고층아파트 재개발을 놓고 가장 첨예하게 갈등을 빚는 곳은 한남동 일대다. 시는 이 일대 건물 높이를 20m 이하로 제한해 남산의 조망권을 확보할 방침이다. 그러나 용산구와 주민들은 50m(15층) 이상으로 지어야 재개발 사업이 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남동은 남산과 관악산을 잇는 중요한 조망축이기 때문에 저밀도 개발이 불가피하다”며 “조망점을 이동해가며 남산 경관을 가리는지를 판단해도 20m 이상을 허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기홍·서정보·이명건기자>suhchoi@donga.com

◇전문가 의견◇

전문가들은 한강 일대를 경관관리지구로 지정해 무분별한 아파트 난립으로 인한 경관 훼손을 막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정석(鄭石)박사는 “건축 관련 법규나 경관 심의만으로는 한강의 경관 훼손을 막을 수 없다”며 “서울의 상징인 한강만큼은 특별지구로 지정해 경관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처럼 한강변 아파트의 재개발이나 재건축에 대해 사안별로 대처해서는 효과적인 경관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남산과 관악산을 잇는 대표적인 조망축으로 경관상 매우 중요한 이촌 반포 옥수지구는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경관관리지구로 지정하면 한강 일대 건물의 용적률 상한선을 현재의 300%보다 낮추고 건물 높이를 10층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옥수동 일대처럼 강변과 맞닿은 구릉지는 건물을 5층 이내로 제한해야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정박사는 아파트 재개발 때 한강을 완전히 가로막는 획일적인 건물 배치 대신 아파트 동 사이를 벌려놓거나 높이를 달리해 시야를 부분적으로라도 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한강 연안의 60% 이상이 주거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강을 상업지구나 새로운 도시활동의 중심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서울시립대 이경재(李景宰)교수는 “정부나 시의 한강 대책은 한강 자체를 어떻게 꾸밀 것이냐 하는 미시적인 문제에만 집중돼 있다”며 “서울 전체의 조망권과 도시 기능을 살리는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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