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광고]'버거킹햄버거'-'나이키운동화'

  • 입력 2000년 3월 8일 08시 28분


샛노란 배경을 뒤로 하고 햄버거 하나가 꼿꼿이 닭발을 딛고 서있다. 도톰한 고깃조각 위에 겹겹이 올려진 파란 상추. 배경 한귀퉁이에는 자그마한 버거킹 로고.

태국에서 만들어진 광고다. 단 몇 초도 생각할 여지는 없다. 한눈에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닭고기를 사용한 햄버거라는 뜻이다.

에두르는 말로 주절주절 떠들다가는 자칫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붓을 들었다가 여백만 남겨두고 한 자 써내지 못한 카피라이터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이 단지 글 몇 줄 적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광고의 컨셉을 제시하고 그 개념에 맞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일까지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여전히 말에 죽고 말에 사는 카피라이터. 영상시대에 카피라이터의 생존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광고다.

다음 광고. 남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여성. 잡지 맞은편 페이지를 채운 일본어 카피.

광고라기 보다는 차라리 기사에 가깝다. “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런 운동도 않던 여성이 하루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분, 어느새 30분쯤은 아무렇지 않게 달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습니다. 싫증을 느낀 그녀는 조깅스쿨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에게 맞게 달리면 더 쉽고 기분좋게 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달린다는 것이 다시 재미있어졌죠. 그녀는 말합니다. ‘글세, 피가 몸 구석구석까지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유산소운동은 당신을 바꿀 것입니다.”

느릿한 이야기 속에 나이키 운동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무슨 광고인지 보여주는 것은 그녀의 머리 위에 후광처럼 자리잡은 나이키의 브랜드 로고뿐. 소비자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최대한 살린 광고다.

카피가 실종된 버거킹 광고와 비교한다면 가히 용감하달까. ‘카피라이터는 살아있다’고 강변하는 것 같다. 즉각적 감각에 호소해야 하는 음식과 조금은 생각하고 사야 하는 운동화라는 상품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달라지는 시대는 ‘광고의 꽃’ 카피라이터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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