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핵무기의 파괴력은 역설적이게도 냉전시대에는 ‘공포의 균형’을 불러와 핵전쟁뿐 아니라 재래식 전쟁의 일부도 억제해 온 것이 사실이다. 냉전이 종식된 지금, 바뀐 것이 있다면 이란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핵무기 보유 및 개발 의혹국’들이 계속 증가하는 동시에 ‘핵비확산조약(NPT)이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기득권만 보장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국가도 늘고 있는 것.
미 국방부는 25개국 이상이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30여개국이 화학무기를, 10여개국이 생물학 무기를 갖게 되는 등 새로운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이 늘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덧붙여 냉전 종식 이후 민족 또는 종족간의 갈등은 고삐 풀린 양상으로 증폭되고 있다.
대량 살상무기의 발달과 민족갈등, 이 두 가지 요소가 ‘최후의 전쟁’을 그 어느 때보다 부추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연 인류를 말살시킬 수도 있는 ‘최후의 전쟁’은 임박했는가.
“○년○월○일 서울 등 대도시에서 북한 게릴라부대의 무장테러가 진행되는 동시에 비무장지대 전역에서 북한군의 남침이 시작됐다. 오키나와주둔 미 해병대가 대구로 급파되는 등 전세계의 미군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2차 한국전쟁’이 발발한 다음날 중국군은 미사일과 공군력을 총동원, 대만을 급습했다.…한국전에서 미국 호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연합군이 반격을 본격화하면서 미국은 중국 북한과의 핵무기 대결 여부를 심각히 고민한다.”
미국의 전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와 스탠퍼드대 연구원 피터 시바이처가 함께 쓴 ‘넥스트 워(The Next War·96년)’는 ‘2차 한국전쟁’ 등 미 국방부가 가상적국을 상대로 프로그램화한 5가지의 전쟁게임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이 책의 부제는 ‘세계 대전쟁’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재군비에 힘을 쏟아 남중국해의 브루나이와 인도네시아로 진격한다. 첨단병기를 동원한 제2차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는데…”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러시아는 다시 동구(東歐)를 점령하고 독일 프랑스로 야욕을 뻗치지만 오랜 기간 전쟁 경험이 없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허둥대며 속수무책일 뿐이고…”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이란은 걸프 연안의 산유국을 차례로 점령해 세계 석유자원의 독점을 꾀하며…” “과격한 혁명정권이 탄생한 멕시코는 불법 난민을 대량으로 미국에 보내고 미국 각지에서 폭동이 발생하면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긴장이 높아간다.”
넥스트 워에 소개된 이들 ‘전쟁게임’은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91년 걸프전 승리 이후 미군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것에 비례해 나날이 가중되고 있는 국제안보의 불안상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와인버거는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 모두 그들이 제어할 수 없는 힘의 희생물이다. 역사의 커다란 전쟁이 그러하듯 이 전쟁 또한 상대국에 악의를 품지 않은 나라들 간의 싸움이다. 서로의 이해부족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일본 모두 합리적인 국민이라는 데에서 전쟁은 시작된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바라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조지 프리드먼과 호주의 국제정치전문가 매러디스 르바드가 함께 저술한 ‘제2차 태평양전쟁’(The Coming War with Japan·91년)이 전개한 미국과 일본 간의 가상 전쟁시나리오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초강대국화한 뒤 정치외교적 영향력, 나아가 군사력에서 미국 러시아와 비슷해질 때 냉전시대에 잠재되어 있던 미국-일본 간의 갈등이 최악의 경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두 나라 사이의 전쟁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경고하는 것은 저자들의 목적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 간의 관계를 일례로 들어 국가 간의 세력관계가 유동적이며 세력재편성 과정에서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베트남 등) 중국의 적들은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군도 주변 바다에 매장된 풍부한 석유를 오랫동안 강점해 왔다. 그 주변 바닷속에는 100억t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의 석유이고 중국인들은 이 석유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잠시 뒤 우리의 영웅적인 공군과 해군이 과거 우리의 막강한 혁명적 군대가 수행했던 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에 착수할 것이다.”
미국 BBC방송의 아시아특파원으로 10년간 활동했던 험프리 헉슬리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홍콩지국장 등을 지낸 사이먼 홀버튼의 공저 ‘드래곤 스트라이크-밀레니엄 전쟁(9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베트남 공습을 이렇게 가상하고 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비무장 미국 상선이 격침되고 일본이 핵무장하며 영국 등이 잇달아 중국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한반도에서도 소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중국은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꼬리를 내리려 하는데…”
20세기 후반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티벳 남중국해 그리고 대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벌어질 미래의 역사를 ‘허구적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헉슬리 등저자들은 밝히고 있다.
핵무기가 보유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전에 사용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실제 코소보전쟁과 올해 체첸전쟁 등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국지적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핵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도 ‘화약고’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핵무기 생물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으로 이같은 국지적 재래전이 자칫 대량 인명살상이 가능한 ‘큰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에 예로 든 몇가지 시나리오도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생물화학무기는 개발비용이 핵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 ‘빈국의 무기’로도 불린다.
미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역저 ‘문명의 충돌(96년)’에서 문명이 서로 만나는 단층선상에서 대규모 집단(국가 포함)간의 무력충돌이 빈발할 것이라며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이같은 문명충돌 전쟁의 이면에 이슬람 문명이 관여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피뭍은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고 경계했다.
지난해 60억을 돌파한 인구 폭발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 인구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이슬람 인구의 비율은 80년 18%에서 2025년 31%로 늘어날 전망. 이슬람 인구 증가가 인근 집단들에게 정치 경제 사회적 압력을 가해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며 충돌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아시아의 긴장고조 가능성도 대표적인 분쟁 요인으로 지적된다.
물론 세계 경제의 통합과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력충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21세기의 인류가 이같은 번영의 뒤안길에서 구시대의 유산을 안고 전쟁의 임계점에 선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키워드: 사이버 전쟁▼
미래전에서 가장 새롭게 등장할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이버 전쟁’이다.
앨빈 토플러는 저서 ‘전쟁과 반전쟁’에서 농경사회의 백병전과 산업사회의 대량파괴 살육전에 이어 제3의 물결시대의 전쟁은 하이테크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쟁의 핵심은 무기의 첨단화를 지나 궁극적으로 ‘사이버 전쟁’이라는 것.
미국 국방부도 1월5월 적의 컴퓨터망에 침투해 지휘통제 및 방공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사이버전쟁’을 21세기의 새로운 전술로서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첨단 전투기, 레이더 방공망 등은 정교한 컴퓨터의 조작 없이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들 무기와 장비는 컴퓨터라는 ‘두뇌’만 교란되면 고철 덩어리. 따라서 사이버전의 핵심 전사는 ‘컴퓨터 바이러스’나 전파장애 등이라는 것.
새 해커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장 긴장하는 사람이 각국의 군관계자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사이버전쟁은 아군이나 적군 모두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을 굴복시키는 ‘무혈 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일단 개발되면 유지비용도 적다.
그러나 사이버전은 전자화되지 않은 무기와 장비 등을 동원한 ‘재래식 전술’에 취약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냉전 이후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인종·민족·종교갈등 등에 의한 전쟁도 사이버영역 밖의 전쟁들.
또 미군이야말로 가장 전자화된 전력을 갖추고 있어 역으로 적의 사이버 공격에 가장 취약할 수도 있다고 미국은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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