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같은 여자 입장’이라는 게 참 웃기는 얘기다. 지난해 ‘옷 로비의혹사건’이 터져나왔을 때 “같은 여자입장에서 창피하다”는 여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남성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다고 “같은 남자입장에서 부끄럽다”는 말을 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이는 우리사회에 ‘여자는 다 같으며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일 수 있다. 어떤 여자의 일을 전체 여성집단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건 부지기수다. 가령 A라는 남자가 지각을 일삼는다면 “A는 게으른 사람이야”해도, B라는 여자가 지각하면 “그래서 여자들은 문제라니까”하는 소리가 금세 나온다.
때마침 뛰어난 여성 개인들이 한꺼번에 주목을 받고 있지만 열심히 사는 여성들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기도 했고, 배우지 못한 자신 대신 남편이나 아들을 입신양명시켰으며, 더러는 복부인이 되기도 했다. 요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있을 뿐이다.
벤처기업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엔 유독 젊은 여성들이 많다. 정보화시대는 섬세한 여성들의 감성을 요구하는 까닭이라고 풀이되기도 하지만, 무뚝뚝한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름없이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그만큼 대우받는다.
이들 가운데는 기존 ‘굴뚝 산업’의 오만한 문짝을 열지 못했던 여성이 적지 않다. 대기업을 비롯한 보수적 일터에선 여성에게 입사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주가조차 떨어지고 있다는 그들 조직은 개인차를 인정하는 대신 여성이라는 집단 전체를 거부해왔다.
이같은 남성위주의 조직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에게는 능력 외에도 몇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 그들은 남자들이 경쟁심을 갖지 않을 만큼 여성적이었다. 중견기업의 30대 여성이사가 “남자들은 자기들이 경쟁상대로 쳐주지도 않던 내가 어느새 이 자리에 올라온 것에 놀라는 눈치”라고 말할 만큼. 둘째, 그들은 미련할 정도로 버텼다. 국내은행 가운데 최초로 여성 지점장이 된 이는 “똑똑한 여성동료들은 남성위주의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리더라”고 했다. 셋째, 그들은 디지털적으로 사고하고 아날로그적으로 행동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부지런했으나 지극히 고전적으로 세상을 대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것도 여자들이 소수였고, 그래서 어떤 공통점으로 꿰뚫을 수 있는 곳에서의 얘기다. 수많은 남성개인과 단 하나의 여성집단을 안고 가는 사회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성별에 따른 차이를 접어두고 개인차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지금까지보다 두배로 풍요로운 자원을 가질 수 있다.
김순덕 (생활부 차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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