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경 서울 성동구 왕십리2동사무소 직원들이 고홍주(高弘柱·70)씨를 반갑게 맞았다. 고씨는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더니 각기 다른 사람 명의의 주민등록등본과 전세일자 확정신고서를 떼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고씨가 동사무소 등 행정관청을 거의 매일 드나드는 것은 동네 주민들을 위해 필요한 민원서류를 대신 떼어주는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
고씨는 “2년여 전에 30년 동안 하던 통장직을 그만둔 뒤 뭘 할까 고민하다가 통장으로 일하면서 배운 것을 살려 맞벌이부부 장애인 직장인 등 시간이 없거나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민원서류를 떼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민원서류의 종류도 등기부등본, 호적등본, 건축물관리대장, 토지대장, 전세입자 확정신고서, 의료보험카드 고지서, 병적증명서 등 다양하다.
주민들은 고씨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가 고씨에게 서류를 떼어달라고 부탁한다. 고씨는 아예 접수대장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고씨가 98년 7월부터 지금까지 대행해준 민원은 1000건이 넘는다. 물론 모든 것이 무료이고 인지대 등 꼭 필요한 비용만 받는다. 동사무소 구청 등기소 등을 돌아다니려면 교통비가 만만찮게 들지만 무조건 무료로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 민원서류는 신청한 주민이 고씨 집에 가서 직접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고씨가 직접 집까지 배달해준다. 고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1년에 평균 3000건 이상의 민원서류를 대행해 주는 것을 목표로 세워놓았다. 이번달 반상회 때에는 자신의 전화번호와 서비스 내용 등이 담긴 전단 4000장을 자비로 만들어 나눠줄 예정.
고씨는 “처음에는 집사람과 자녀들이 ‘70세 노인이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안쓰러워 했지만 지금은 전화도 대신 받아주는 등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02-2281-5247, 2298-2468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