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극복 민간교류론 어려워▼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여건 속에서 북한이 우리의 제안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의 정경분리 정책을 최대한 이용하여 경제적인 실리를 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남한 정부를 철저하게 소외시켜 왔다. 이제 와서 북한이 정경을 분리하지 않는 정부간 협력에 호응해 올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근본적으로 북한이 남북경협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에 대한 필요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체제위협에 대한 우려를 저울질한 결과가 될 것이다.
사실 북한이 개방과 체제수호의 딜레마로 고심해온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0여년전 북한은 냉전 종식과 동구권 붕괴에 따른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그 나름대로의 ‘서방정책’을 시도하였다. 그 당시 북한은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개선의 관건은 남북한 관계의 개선이라고 판단하여 남한과의 대화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는 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했던 대로 서방의 문을 열지 못하자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또한 북한의 핵 의혹으로 난관에 봉착하자 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을 계기로 미국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98년 현재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는 북-미 북-일 등 양자간의 관계개선이 최소한 남북관계의 관계개선보다 앞서 가지 않을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였고 이것은 북한의 대외관계 확대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하였다. 북한과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 수립이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현 정부의 발상전환은 현재 북한의 대외 관계 확대 노력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 점에서 북한은 우리 정부에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제 김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대응하는데 북한이 고려할 사항들이 있다. 우선 북한의 경제난은 자력회생이 불가능하며 남북경협을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투자 및 교역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경제 교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지금까지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껴 남북간 정부 차원의 대화와 교류를 피해왔으나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 필수 조건은 바로 경제난을 극복하는 것이다. 동독의 운명을 목격한 북한이 남북협력과 교류에 대해 위협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러한 우려는 우리가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해줌으로써 불식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南韓의 인내-호의에도 한계▼
과거 동독이라는 체제는 그 곳에 주둔한 40여만명의 군대를 포함한 소련의 군사적 정치적 지원에 의해 유지되었다. 소련이 동독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동독은 체제를 버텨주는 기둥을 잃게 되었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던 것이다. 반면 북한은 독자적으로 거대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통치체제, 그리고 이념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또 설혹 남북경협이 북한이 의심하고 있는 것같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더라도 북한이 그 정체를 아는 한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을 포함하는 주변국들도 북한의 체제 존속을 선호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베를린 선언에 제시된 협력방안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남한의 인내와 호의도 그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승주(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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