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Specials]X-Y세대 무엇이 그들을 구별짓는가

  • 입력 2000년 3월 12일 21시 01분


“난 60년대 세대가 아니에요. X세대도 Y세대도 아니죠.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만든 거예요.”

이것은 올해 29세인 그래픽 디자이너 샌디 드 리소보이의 말이다. 사회학과 교수로서 나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과연 세대라는 것은 우리가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좋든 싫든 그냥 남들이 이름을 붙여주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생활방식 서로 달라▼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1927년에 발표한 고전적인 논문 ‘세대의 문제’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대라는 것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인가. 그는 아니라고 했다. 세대란 강렬한 역사적 사건의 충격을 느끼고 그 사건에 대해 공통된 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1930년대, 40년대, 60년대에 각각 성인이 된 미국인들은 대공황, 제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인해 강렬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역사의 상징적인 사건들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사회적 경제적인 것이었고, 그 사건들의 초점은 개인적인 것들에 맞춰져 있었다. 소비지향주의, 대중매체 그리고 가족과 직장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증가함에 따라 형성된 생활방식의 문제가 바로 초점이었던 것이다.

▼갈수록 독립적 사고▼

현재 20대와 30대 초반인 사람들은 흔히 X세대라고 불린다. 이 말은 더글러스 쿠프랜드의 소설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소설 ‘X세대’와 그 뒤를 이어 나온 영화 ‘게으름뱅이’에는 교육수준이 아주 높으면서도 거기에 걸맞지 않는 직업을 갖고 사회의 변두리로 떨어져버린 괴짜들이 등장한다.

X세대에 속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이전 세대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28세의 도시 계획가인 찰스 셀러즈는 1950년대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었다면서 “여자라면 주부가 되고, 남자라면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여자들은 독신 여성, 전문직 여성, 레즈비언, 동거중인 연인, 아내 등이 될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 직업은 내가 세 번째로 가진 직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선택권이 넓어졌다는 것은 어딘가에 대한 소속감이 오래 갈 것이라는 확신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적어도 중산층의 X세대 젊은이들은 ‘자신과 딱 어울리는 배우자’ ‘자신과 딱 어울리는 직장’을 꽤 까다롭게 고른다. 그러나 그런 배우자나 직장을 찾은 다음에는 과연 그 배우자와 직장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철학교수인 제럴드 월루리스는 과거에 사람들을 붙잡아주던 것들이 더 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사적인 의식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80년대와 90년대의 세대를 규정짓는 것은 바로 이 뿌리 없음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처럼 방황하는 의식은 요즘 미국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최근의 경제적 기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살핌과 배려의 측면에서 ‘적자’를 경험하고 있다. 사회복지 서비스는 감축되고 병원들은 수술한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환자를 퇴원시킨다. 그러나 집에서 환자를 돌볼 사람이 누구인가. 요즘은 어머니들의 3분의 2가 직장을 갖고 있으며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편모가정이다. 어머니들 역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식 개인주의로 인해 우리는 보살핌의 부족에 저항하기보다는 그것을 흡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보살핌? 그런 게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어?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처럼 삶을 자꾸만 개인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80년대와 90년대에 이 문화적 공백을 메워주는 주체로 시장이 등장했다. 경제학자인 로버트 커트너는 시장이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생활까지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세대를 규정짓는 옷 음악 비디오 등을 제공해주고 X세대와 Y세대는 시장의 새로운 고안품 같은 기능을 한다.

▼구매 성향으로도 구별▼

즉 그들 세대는 그들의 행동이나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들이는 물건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드 리소보이는 지난해 말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항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가게 유리를 부순 생각 없는 무정부주의자들은 나도 싫다. 그러나 세상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려 하는 거대기업들에 저항하고, 지역 사회와 바다거북 같은 동물들을 위해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지구의 미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보존하고 싶어하는 것은 나이 든 세대이고, 젊은 세대는 기존의 것들을 때려부수는 행위에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애틀에서는 젊은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역사를 중시하는 쪽이었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장부책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specials/030800gen-coming-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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