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되돌아본 뉴욕100년/1950년대 '야구 열풍'

  • 입력 2000년 3월 14일 21시 28분


1948년에 나는 열살이었다. 학교에서 소련의 폭탄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훈련을 한답시고 선생님이 “머리를 숙이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치면 재빨리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들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깨달은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러나 책상 밑으로 급히 들어가면서 무릎을 부딪혔던 기억, 옷의 솔기가 타졌던 기억, 방사성 낙진에 내 등이 노출되어 있다는 공포 등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친구 배리 골드먼은 쾌활한 목소리로 프로야구 경기의 스코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 '야구=애국' 동일시▼

남자아이들은 반드시 야구 이야기를 해야 했다. 자기가 계집애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야구에 관심이 있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성차별이니, 인종차별주의니 하는 것들이 아직 맞서 싸워야 할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우리의 적은 공산주의뿐이었고,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 애국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역시 야구에 관심을 보여야 했다.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아무 팀이나 골라서 응원을 했다.

브루클린 다저스팀은 맥주, 땀, 필터가 없는 담배, 목쉰 웃음소리, 동물적인 기쁨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라이벌인 자이언츠팀은 맨해튼의 가짜 지성주의, 냉정함 등의 상징이었다. 한편 브롱크스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양키스팀은 전문 직업인들의 상징이었으며, 관광객과 부자들을 위한 팀이었다.

세 팀 모두 훌륭한 팀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양키스가 최고였다. 양키스는 페넌트레이스에 8번 참가해 월드시리즈에서 6번 우승했다. 다저스는 페넌트레이스에 5번 참가했고, 1955년에는 양키스를 물리치고 챔피언이 되었다. 자이언츠는 페넌트레이스에 2번 참가했고, 월드시리즈에서 1번 우승했다. 우리 동네의 양키스 팬들은 다저스나 자이언츠의 팬들처럼 팀이 경기에서 진다면 죽어버릴 것 같은 시늉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

1957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뉴욕타임스에서 세속적인 다저스와 히피 같은 자이언츠에 대한 분노의 편지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잘난 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양키스의 팬이 된 것은 순전히 내가 브롱크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른돼서도 열열한 팬▼

내 친구 배리는 지금도 자이언츠의 팬이다. 맨해튼에서 가업인 인쇄업을 이어받은 그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처럼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마크 채프먼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매년 열리는 작문 콘테스트에서 최고상을 받았음에도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내 글이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선생님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그는 결국 의대에 진학해 위장병 전문의가 되었다. 그 역시 지금도 양키스를 응원하고 있다.

▽필자:로버트 립사이트(NYT 칼럼니스트)

(http://www.nytimes.com/specials/nyc100/nyc100-6-lipsyt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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