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김상영/ '자본주의의 私生兒'

  • 입력 2000년 3월 16일 19시 35분


우리는 지금 변화의 극치를 구경하고 있다.

시대의 화두가 된 인터넷과 모든 사람의 관심사인 재테크를 교묘히 결합시킨 금융사이트의 예를 들어보자. 작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금융사이트의 수는 현재 200개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주로 주식시장을 다루는 금융사이트는 소수가 독점하던 금융관련 정보를 누구나 공유할 수 있게 했으며 이용의 간편성, 주식의 대중화 등 긍정적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현재로서는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익을 낼 수 있는지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미국 최대의 금융사이트 중 하나인 quicken.com은 국내 사이트에 비해 고도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한국 땅에서 비슷한 사이트가 200개나 생겨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식을 통해 자본이득을 챙기자는 발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과 재테크를 결합한데다 벤처기업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는 두루 갖춘 셈이다. 사업에서는 적자를 내도 주식에서 돈을 번 뒤 다른 벤처를 인수하는 요즘 풍토를 떠올리면 된다.

만년 적자는 ‘미래가치’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포장된다. 새로운 금융사이트를 준비 중인 한 전직 증권회사 간부는 “회사가 불확실해야 주가가 뜬다”고 최근 세태를 꼬집었다. 기업의 ‘현재가치’가 확실하면 ‘미래가치’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태의 배경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있다. 이들의 돈을 모아 자신의 자본 없이 이미 10개 가까운 인터넷회사를 만든 사람도 있고 1년 내에 시중은행을 인수하겠다고 호언하는 예비 벤처금융인까지 나타났다. 일찍 이 방면에 눈을 뜬 선발업체 창업자 중에는 천억원대의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도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렇게 거대한 부를 쌓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회에 창출해낸 부가가치는 턱없이 적다는 점이다. 미미한 매출 규모가 이를 증명하며 그나마 적자이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간 셈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고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금융사이트로 대표되는 인터넷기업 쪽을 아는 사람들은 요즘을 ‘광란의 시대’로 규정한다.

최근 진행되는 사회변화는 인위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기 때문에 변화의 결과나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국가나 사회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인 정문술미래산업회장이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이 시류에 영합해 돈을 버는 벤처들에 보낸 따끔한 충고나 미국 포천지의 벤처 비판은 모두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들도 기술 개발이나 경영을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금융의 장난만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자본주의의 사생아들’에 속지 말아야 한다. 거품은 예고 없이 꺼지는 것이다.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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