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신의 독약'/술과 아편을 벗삼아 걸작을 쓴 문인들

  • 입력 2000년 3월 17일 19시 09분


▼'신의 독약' 알렉산더 쿠퍼 지음/책세상 펴냄▼

“참된 현실은 몽유, 광기와 도취 속에서 표현된다.”

인류의 역사는 중독과 도취의 역사다. 술에 취하고 환각제에 취하고…. 원시 종교의 샤먼(사제)은 도취제(약물)를 복용한 뒤 엑스터시(황홀경) 속에서 미래를 예언하고 제의를 수행했다.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되는 환각제,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 등은 중독과 도취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덴 동산 이후 중독과 도취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인류사에 있어 인간과 약물 도취의 관계를 살펴본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서구 문학과 도취의 관계다.

저자는 독일의 소장 문학평론가.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시기는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 그는 이 시기를 ‘도취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 이전까지 도취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종교적이거나 질병 치료, 공동체의 유대 강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는 다르다. 이성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중시했던 낭만주의. 황홀한 자아를 발견하고픈 욕망이 분출했던 낭만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신비 체험이 도취의 새로운 동기로 등장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각에서 낭만주의 문학을 바라본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와 랭보, 독일의 철학자 니체,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 미국의 시인 포와 에머슨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은 술에 아편을 섞어 마시며 환각 속에서 걸작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왜 그렇게 약물과 도취를 즐겼는가. 권태로부터의 탈출 혹은 현실 도피?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취에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읽어낸다. 한 예로, 보들레르의 도취와 그 도취 속에서 나온 시들은 당시 부르조아의 반동적인 가치관과 경직된 사회 규범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도취는 자칫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지만 기존 체제와 가치관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약물 중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약물 중독의 끔찍한 결과를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도취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박민수 옮김. 전 2권. 각 367 387쪽, 1만5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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