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5일 어린이 날에 해와 달 그리고 육안으로 보이는 태양계의 다섯 행성, 즉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한 줄로 늘어선다. 이른바 행성직렬 현상이 나타나면 지구는 무사할 것인가.
일부에서는 행성직렬로 인류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주장한다.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면 그들의 중력과 기조력(起潮力)이 집중되어 커지므로 지구에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력은 지구 위의 물체에 작용하는 인력이고 기조력은 지구의 해면을 오르내리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행성직렬 현상이 발생하면 행성들의 합쳐진 중력이 지구의 축을 기울여서 가령 아프리카를 북극으로, 남극을 적도 근처로 옮겨 놓는다. 그렇게 되면 극지의 만년설이 녹아 대도시를 물바다로 만들 것이다. 조석간만을 일으키는 기조력이 증대됨에 따라 지진으로 바다가 갈라지고 엄청난 해일이 일어나 인류는 노아의 홍수 이래 최대의 재난에 직면하게 된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천문학자들은 17세기 초 독일의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을 사용하여 과거 또는 미래의 특정 시기에 특정 행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행성이 함께 모이는 날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2000년 5월의 행성직렬이 벨기에 천문학자에 의해 1961년에 비로소 발견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이와 비슷한 행성직렬이 1000년에서 2400년 사이에 14번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행성직렬 현상의 발견은 뉴 에이지 신봉자나 종말론자들에게 최상의 선물이었다. 그들은 1962년 2월 5일 해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이 거의 일직선으로 모이므로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날 남극의 만년설도 녹지 않았고 지진도 발생하지 않았다. 특기할만한 사건이라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의 독립을 선언한 것뿐이다. 행성직렬 현상이 대중을 공포에 몰아넣은 최대의 사건은 1982년에 발생했다. 이단 과학자들이 펴낸 ‘목성 효과’라는 악명 높은 책에서 1982년 3월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면서 합쳐진 중력이 태양에 폭풍을 일으켜 지구에 지진이 발생하고 수백만명이 죽게 된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진은커녕 행성직렬 현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목성 효과’가 엉터리였음이 밝혀졌으나 행성직렬이 지구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특히 행성들의 기조력이 합쳐지면 지진이 일어나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해와 달의 기조력에 의해 바다의 수면이 오르내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0년 어린이 날에 지구에 변괴가 생길 것인가. 행성이 지구에 미치는 기조력을 계산해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기조력은 행성의 무게와 지구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지구에 대한 해의 기조력이 1이라면 달은 2.1로 해의 배가 된다. 달이 해보다 지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양계의 8개 행성의 기조력은 모두 합치더라도 5000분의 1에 불과하다. 목성과 토성이 거대하지만 태양보다는 훨씬 무게가 작고 달보다는 훨씬 멀리 지구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행성이 완벽하게 일렬이 되더라도 지구 대양의 조류를 25분의1㎜ 정도밖에 끌어올리지 못한다. 요컨대 행성직렬로 말미암아 지진이 발생해 지구가 물에 잠길 가능성은 없다. 2000년 5월의 행성직렬이 위험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면 그들이 모이는 광경을 눈여겨 볼 때가 된 것 같다.
거대한 목성과 토성은 이미 저녁 하늘에 갈수록 가까워지는 모습이 또렷하다. 화성은 3월말 무렵 목성과 토성에 접근한다. 가장 인상적인 모임은 4월 6일 초저녁에 볼 수 있다. 목성 토성 화성이 초승달과 동아리가 되는 것이다. 이어서 해는 태양계 안쪽의 수성과 금성을 끌며 이 동아리를 향해 다가간다. 마침내 5월 5일 7개의 방랑자들은 25도 이내에서 일렬로 늘어선다.
이들은 1962년 이후 가장 가깝게, 그리고 2675년까지 가장 가깝게 직렬을 이루면서 지구를 향해 평화의 손짓을 할 터이다.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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