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금감원 은행검사 '과잉' 논란…결과위주 부실추궁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할인어음 취급할 때 거래가 적절한지 따져보지 않고 융통어음을 할인하는 바람에 1개 업체에 10억원을 물렸다.’

‘담보로 잡아놓은 주식가치가 떨어지는데도 보강조치를 취하지 않아 10억원의 손해가 났다.’

금융당국이 24일 공개한 신한은행에 대한 검사 지적사항이다. 은행이 스스로 적발해야 할 부실을 감독당국이 일일이 간여한다는 지적이 거꾸로 나올 만하다.

지난달 발표된 조흥 국민 대구은행에 대한 금감원의 지적사항도 ‘시시콜콜’하기는 마찬가지였다.국민은행은 수출환어음 등을 매입할 때 신용장 조건과 일일이 대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흥은행은 매입대상이 아닌 기업의 어음을 사들였다가 각각 지적을 당했다. 관치에 길들여진 은행들이 감사에 소극적인 것도 문제지만 자율경영에 무리를 줄 만한 당국의 ‘과잉감독’도 개선해야 한다는 항변이 나온다.

▽은행검사의 공과〓연례적으로 벌어지는 금감원의 은행검사는 보통 경영건전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산운용 자본확충 유동성 리스크관리 등 5가지 항목별로 점검표를 만들어 문제점을 찾아낸다. 1년 넘게 벌어진 13개 시중 지방은행의 검사결과 여신불량 업체에 대한 부당대출 등이 적발돼 666명의 전현직 임직원이 문책을 당했다. 대형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임원들은 민형사상 처벌을 받기도 해 대출관행이 과거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건전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당국의 검사가 부도여신이나 워크아웃 여신에 대해 우선적으로 부실경위를 캐다보니 절차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이에 따라 ‘보신주의’적 대출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H은행 관계자는 “IMF전엔 인맥을 동원해 가까스로 거래를 튼 업체가 외환위기로 갑자기 무너지는 사례가 많았다”며 “우수한 영업사원이 문책을 당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담보가치 하락을 방치했다’는 당국의 적발내용도 시빗거리다. 무담보 신용대출이 정착될 가능성을 본원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자체 감사기능도 문제〓금감원은 은행 자체 감사를 책임진 감사들의 경우 ‘경영진의 결정을 사후에 공람했다면’ 처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은행의 자율적 감사기능을 매우 좁게 해석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감독당국 출신 시중은행 감사들은 매년 은행 정기검사철에는 금감원에 상주하며 ‘로비’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조조정 이후 실시된 은행검사는 과거 부실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며 “올 은행 주총에서 3인 이상 감사위원회가 구성되면 은행의 자정능력은 크게 향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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