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몬태나주의 빙하공원에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글귀가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야생동물도 거지근성을 키워 놓으면 본성을 잃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미국 그랜드캐니언에는 천길 낭떠러지에도 철책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관료 중심의 과보호(過保護)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 꺼낸 소리다.
우리 정부는 국민을 ‘사육(飼育)대상’으로 생각하는 감이 있다. 정부정책 중에서 ‘육성’이니 ‘지원’이니 하는 말을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정부가 제대로 육성하고 지원해야 할 분야가 물론 많다. 지식경쟁력이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엔 인적 자원, 특히 영재를 길러내는 일부터 매우 절실하다. 산업전략 차원에서 정부가 나설 일도 적지 않다. 복지시책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세금 거둬 정부가 벌이는 육성사업 지원사업이 모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돈을 쓰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4인 가족 한 가구가 한 해에 내야 하는 세금은 800만원 정도다. 나라 빚은 또 다른 부담이다.
한나라당이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문제삼으니까 그 증가요인에 대해 정부는 ‘재정이 경제살리기와 일자리창출 등에 앞장선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 2년간 실업대책 및 서민층 지원에 21조7000억원, 중소기업 지원에 14조2000억원을 쓴 것을 예로 들었다.
정부산하 노동연구원과 한국개발원은 막대한 예산을 썼지만 실업대책이 빗나갔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며칠 전에 냈다. 실업대책이 임시취업과 일시적 생계보호에 치중돼 장기적 고용창출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가 오히려 재취업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부처가 실업대책비의 거품을 따져볼 능력과 예산낭비를 자성(自省)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러니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뭐가 생산적이지?’라는 반문이 나온다. 탈무드엔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적혀 있건만….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벤처기업 자금지원에도 거품이 끼고 있다. 옥석 구분없이 벤처기업을 양산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말하면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라. 그 과정엔 거품도 있게 마련”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부 관계자들이 ‘무늬만 벤처’는 솎아낼 것이라고 간간이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늬만 벤처들이 그럴듯한 간판 달고 손쉽게 팔자 고칠 수 있는 풍토를 조장한 게 누구인가.
정부의 ‘벤처천국’정책은 이미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사채 양성화를 가져왔다. 남다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이라면 돈이 없어 이를 썩히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 오는 정원에 스프링클러를 돌리고 있다.
한 벤처기업가는 말했다. “정부의 진짜 역할은 정상적 벤처기업들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 인프라를 뒷북치지 않고 만들어 주는 일이다. 가상공간에서 온라인유통을 하는데도 창고가 있어야 된다는 낡은 규제를 그대로 둔 채 무슨 도도한 변화 운운하는가. 관료들이야말로 무늬만 변화에 머물러 있다.”
복지예산이나 벤처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부처와 관련기관들이 예외없이 예산주머니 키우기에 혈안이 되고 사업비 많이 쓰는 것을 자랑하는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낭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 과천청사의 어느 간부는 그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예산 따낼 일거리를 많이 만들고 제 손으로 돈을 많이 써야 조직과 권한을 유지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부가 돈 많이 쓰는 ‘육성 지원’정책의 한 비밀이다.
이런 행태를 입법, 예산 결산 심의, 국정감사 등을 통해 벗겨내야 할 국회와 여야 정치권은 오히려 예산 나눠먹기에 여념이 없다. 이 또한 그들의 생존논리 때문일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몇천억원, 몇조원의 예산낭비사례를 아무리 성토해도 메아리가 없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과 정부여당은 지난 2주간 격렬한 재정논쟁을 벌였다. 정부는 국가채무 및 재정적자 관리대책이란 걸 내놓고 휴전을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정부와 민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도 ‘정부가 돈 쓰는 법’의 잘잘못은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이들 삼자의 선거선심경쟁은 계속되고….
<김재홍 논설위원>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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