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목표를 묻자 그는 역시 “40개”라고 잘라 말한다.
과연 올해엔 몇 개를 칠까. 이 문제는 개인이나 구단의 관심사가 아니라 프로야구 팬 전체가 궁금해하는 사항.
팬은 새천년 첫 프로야구 시즌에 이승엽이 일본 왕정치(55개)의 기록을 뛰어넘는 아시아홈런 신기록을 세워 주길 기대하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야구전문가들은 신기록 수립이 힘들다는 쪽에 손을 든다. 상대 투수들의 집중적인 견제가 그 첫 번째 이유. 지난해 이승엽에게 당했던 투수들이 “날 잡아 잡수”하고 손쉽게 홈런 코스의 공을 줄 리가 없다. 어떤 볼카운트에서 어떤 공이 이승엽을 잡기에 주효한지 대비책을 단단히 준비하고 나올 게 틀림없다.
주위의 엄청난 기대감도 그를 억누르는 부담중의 하나. 99시즌의 대활약을 봤던 팬들은 이제 당연히 이승엽이 많은 홈런을 때려 줄 것으로 생각한다. 홈런이 아닌 안타를 때릴 때 팬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보이는 걸 이승엽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셋째,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 가입 여부를 놓고 빚어졌던 논란이다. 이승엽은 “지난 겨울이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털어놓는다. 많은 팬의 비난과 친구의 절교 선언은 좌절을 모르고 승승장구해 왔던 24세의 청년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해외 전지훈련을 가서도 운동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하지만 공도 둥글고 방망이도 둥근 게 바로 야구. 지난해 40개를 목표로 했던 이승엽이 54개나 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또다시 팬을 열광케 할 희망적인 메시지도 많다.
오늘의 이승엽을 만든 ‘사부’ 백인천 전 삼성감독(현 타격 인스트럭터)은 “하루가 다르게 대타자로서의 관록이 붙고 있다”며 타격 노하우가 갈수록 쌓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투수들의 견제가 많겠지만 볼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라며 “올해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왼손타자에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점까지 비슷한 일본과 미국의 홈런왕 왕정치, 베이브 루스의 기록도 비교 대상이 된다.
왕정치는 데뷔 5년째 40홈런을 친 뒤 6년째 55홈런으로 시즌최다홈런 기록을 세웠고 베이브 루스는 7년째 54홈런을 때려냈다. 시기적으로 프로 5, 6년차가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점. 95년 입단한 이승엽은 올해가 6년째로 타격의 절정기에 들어간다.
백인천 전감독은 “40개 이상은 무난히 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 이상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