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비즈니스가 활발해 질수록 세금 추적이 힘들기 때문이다. 클릭 한번에 수백만달러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지는데 따라잡기가 어디 쉽겠는가.
세계화도 이런 추세를 거든다. 거래는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데 어떤 특정 국가만이 징세권을 주장하기는 어렵게 됐다. 자본유치를 위해 국가마다 세금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기업마다 세금은 적게 내고 서비스는 좋은 나라를 찾아 떠나면 남아 있을 기업은 몇 개나 될까. 전통적인 조세주권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각국마다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반대로 탈세나 돈세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환경이 그만큼 좋아졌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돈을, 그것도 세계를 무대로 돌릴 수 있다. 세무공무원이 이를 잡자면 세법 개정부터 해야 하는데 법 개정에만 족히 2년은 걸릴 것이다.
세금은 세원(稅源)의 유동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세원이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있을수록 세금 걷기가 좋다. 반대로 움직이면 힘들다. 일반적으로 부자일수록 유동성이 크다.
세금이 덜 걷히면 사회복지기능의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부자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사회안전망 확보 방법이었는데 세금 걷기가 어려워지면 이런 기능이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의 발달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또 있다. 빈부 격차의 심화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미국 상무부의 보고에 따르면 98년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소득격차는 전년도에 비해 29%가 늘어난 것으로 돼 있다. 컴퓨터의 보유와 인터넷 사용의 차이가 흑백간 인종차별을 더 심화시킨다는 보고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두가지 추세가 야기하는 사회심리적 문제는 이른바 ‘감정의 평등’(equality of emotion)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감정의 평등’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힘이다. 비록 재산과 지위에서는 차이가 나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우리는 평등하다고 믿고 있으면 사회는 유지되고 굴러간다.
흔히 “배가 고파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굶주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에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하는데 같은 맥락이다.
물론 ‘감정의 평등’이 갖는 사회적 폐해도 크다. 못살고 못먹더라도 함께라면 괜찮다는 심리는 건전한 경쟁을 막고 사회와 조직의 구성원들을 모두 하향평준화시킨다. 우리처럼 ‘튀는 사람’이 쉽게 수용되지 않는 문화에서는 그 폐해가 더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감정의 평등’은 유지되어야 한다. ‘남이 세금 낼 때 세금내고 군대 갈 때 가는 것 보니까 저나 나나 살기는 마찬가지’라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감정의 평등’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16대 총선 출마자들의 납세실적과 병역실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감정의 평등’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호<정치부 부장대우>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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