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용인구가 3000만명을 돌파한 2003년 4월. 재택근무 파트타이머로 A그룹 기획관리실에서 일하고 있는 김과장(34)은 가족들과 함께 진해로 벚꽃놀이를 떠났다. 그는 승용차 안에서 IMT2000 단말기로 E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김과장이 음성으로 “E메일을 열어라”는 명령을 내리자 단말기에 문자메일이 뜨면서 이어폰을 통해 회사 부장의 음성메일이 흘러나온다. “신규 사업 진출과 관련된 자료를 오전중에 보내주시오.”
김과장은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한 뒤 집안에 있는 컴퓨터와 연결, 자료를 검색해 E메일로 전송한다. 물론 단말기 버튼을 누를 필요 없이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다. 김과장은 회사 일을 끝마친 뒤 단말기 화면을 통해 최근 매입한 코스닥 종목의 가격 변화와 본선 대국이 한창인 국수전 관련 뉴스를 살폈다.
뉴스를 보다 퍼뜩 가전제품을 그대로 켜둔 채 집을 나섰다는 생각이 든 김과장은 단말기를 조작해 원격으로 집안의 가전제품을 모두 껐다.
앞으로는 PC나 노트북 없이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휴대전화 단말기 하나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회사파일을 보내는 일뿐만 아니라 원하는 TV프로그램과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모든 전자기기를 원격으로 제어할 수도 있다. ‘손안의 인터넷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미 날씨 증권 위치정보 등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는 무선데이터 통신서비스가 현실로 등장했다. 2002년부터는 여기서 더 나아가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작동하면서 동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무선인터넷인 IMT2000단말기가 실용화된다.
▽거리가 없어지고 생활의 패러다임이 바뀐다〓이런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상용화되는 2003년이면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가정 생활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2003년 9월 주부 이모씨(36)는 시댁에 다녀오던 차안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켰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전기밥솥을 미리 작동시키고 전자레인지 속에 있던 찌개를 데우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또 단말기로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옷을 사고 거래 은행계좌에서 인터넷으로 ‘충전’한 전자화폐로 지불한다. 도착 전에 친정 부모님에게 동영상으로 안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무선 인터넷은 업무시간의 개념을 무너뜨린다. 언제 어디서든 단말기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이동중에 발생하는 ‘데드 타임(dead time)’을 ‘프로덕트 타임(product time)’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근무 형태도 재택근무 파트타임근무 자유시간근무제 등으로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정 주부도 손쉽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과거 소수의 계층에 국한되었던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모든 거래가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복잡한 유통 체계가 단축되면 과거 중개 역할을 하던 직업군이 사라진다. 은행지점 증권사대리점 여행사 부동산 등 소위 ‘브로커’ 업종이 무너지고 인터넷 컨텐츠와 무선인터넷과 관련된 신종 직업들이 생겨난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통신이 가능해지고 말 그대로 세계는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가 된다. 무선 인터넷을 통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나 CNN뉴스를 서울 거리를 걷다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IMT2000 상용화 눈앞〓이같은 전망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최근 통신시장은 유선-음성 위주에서 무선-데이터통신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무선 인터넷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인 차세대이동통신 IMT2000도 이미 시범 서비스 단계를 넘어섰다.
이동통신 단말기는 현재 날씨와 증권 정보, 채팅 등 초보적인 데이터통신이 가능한 수준에서 올해말에는 신문 수십장 분량의 정보를 1초에 전송할 수 있는 2.5세대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실현될 전망이다. 즉 IMT2000의 상용화 직전단계에 이르게 된다.
현재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5개사를 비롯해 벤처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IMT2000은 데이터 전송속도가 전화선 모뎀을 사용할 때보다 40배 정도 빠른 최대 2Mbps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초고속인터넷 ADSL이나 케이블모뎀에 비해서도 인터넷을 접속하거나 파일을 다운받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IMT2000 기술 개발에서 가장 앞선 일본의 경우 2001년 9월 IMT2000 시범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한국도 올해말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2002년 상용 서비스에 들어간다.
무선인터넷은 IMT2000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팜PC로 잘 알려진 휴대정보단말기(PDA)의 시장 규모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컴퓨팅 기능과 휴대형 정보처리 기능, 유무선 통신망 기능을 갖춘 PDA는 시장 규모가 연평균 35%씩 증가하면서 2003년경에는 72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서비스지역이 한정되지만 음성이나 영상전화는 물론 대화형 비디오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광대역무선가입자망(B-WLL)도 값싼 무선인터넷의 또다른 기술로서 널리 보급될 전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인찬 박사는 “무선 인터넷의 발전이 몰고올 변화는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나다”며 “무선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언제 어디서나(any time, any where)’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혁명의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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