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별대담]이기준 서울大총장-나가오 교토大총장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21세기의 키워드는 디지털과 지식정보. ‘변화와 속도’가 특징이 될 새 세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변화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특히 우리 사회의 내일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은 21세기를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할지 그리고 사회의 정신적 보루이기도 한 대학은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지, 한국과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기준(李基俊)서울대총장과 나가오 마코토(長尾眞)교토대총장의 대담을 통해 들어봤다. 두 총장의 대담은 동아일보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다.》

▼지식창출 집단이 선도▼

▽이기준총장〓먼저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가 우리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경제구조 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새 시대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발전과 변화의 속도를 경험할 것입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화와 지식의 고도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를 선도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나가오 마코토 총장〓동감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정보의 지식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많은 정보를 짧은 시간에 수집, 활용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나서 초중학생에 대한 컴퓨터와 영어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인의 재교육과 평생교육을 기본 방침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이총장〓컴퓨터와 영어를 기본으로 기존 지식과 정보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능력, 창의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과거처럼 지식의 전수만이 아니라 세계 최초나 최고, 유일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가오총장〓다른 한편으론 21세기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보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불안정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 역시 좋을 때와 나쁠 때간의 격차가 커질겁니다. 이같은 불안정성을 어떻게 제어하는느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이총장〓분명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간의 불균형은 어느 때보다 클 것이고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현상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나가오총장〓현재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대학 역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일본 대학들은 교수들이 연구만하지 학생 교육에는 제대로 나서지 않고 제대로 사회환원도 안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같은 비판을 받아들여 학생에게 교육 동기를 부여하고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있는 힘을 배양해야 합니다. 대학의 연구성과를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총장〓대학은 더 이상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창출의 산실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학제간, 학문분야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학문 영역을 능동적으로 창출해낼 수 있는 기능을 하루빨리 확보해야 합니다. 이점에서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서울대는 국내 다른 대학에 비해 발전기금이 많은 편이나 미국 하버드대에 비교하면 15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나가오총장〓일본의 국립대들 역시 선진국 대학에 비해 정부가 대학에 투자하는 자금이 상당히 적습니다. 말씀대로 미국과 영국의 경우 국민총생산(GNP)의 1%를 투자하는데 비해 일본은 0.5%에 불과합니다. 일본 국립대들도 이를 1%로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총장〓21세기를 맞아 우리 사회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21세기는 디지털 시대라고도 합니다. 대학도 기존의 모습과는 달라져 디지털 캠퍼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강의를 잘하고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교수를 중심으로 대학이 재편된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美-日대학 온라인 학점 교류▼

▽나가오총장〓교토대 역시 디지털 캠퍼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보활용교육을 중점 실시하는 등 최첨단 멀티미디어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미국의 UCLA대와 실시간으로 원격강의를 실시하고 있는데 교토대에서 오전 9시에 강의하면 그대로 미국에서는 오후 5시에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토론과 질문은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원격강의가 많이 나오고 학생들도 이를 통해 학점을 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우수한 교수들의 강의만을 듣게 돼 대학이 공동화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총장〓이같은 변화 속에 인간존중의 가치관이 상실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높습니다. 인간존중 없이는 학문과 사회구성이 다양화되는 지식정보사회를 소화해낼 수 없기에 대학은 인간존중의 가치관을 배양하는데 힘을 쏟아야할 것입니다. 이에 화해와 조화에 기초한 공동체 존중의 아시아적 가치를 찾고 이를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시아적 가치는 결코 서양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가오총장〓그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아시아의 우수한 대학들이 상호 협력해야 하는 필요성도 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격 강의 등을 통해 윤리관 가치관 도덕관은 배울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교수와 학생간에 긴밀한 유대와 친밀한 커뮤니케이션 속에 배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토대에서는 이같은 교육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반성 속에 2년전부터 교수 학생들이 긴밀히 교류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총장〓한일 모두 대학이 개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가오총장〓대학은 기업과는 달리 총장과 학장들이 명령을 통해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고 그러한 일은 건전한 학문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교수 스스로가 개혁의 필요성을 자각해야 하고 총장은 이런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총장〓우선 누구나 본능적으로 있기 마련인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정책이 자주 바뀌면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도 이제 과거처럼 현재에 안주할 수 없다는 걸 하루빨리 인정하고 경쟁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인문학 등 기초과학의 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문학 등 기초과학은 직접 상품을 생산하는 학문이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에 쇠퇴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본질을 가르치는 학문이 대학에서 쇠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인문학을 지원해야 합니다.

▼인문학 정부지원 바람직▼

▽나가오총장〓우리 둘다 이공계출신이라 인문학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줄도 모르죠.(웃음) 산학협동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본에서는 국립대들이 대학 연구의 사회환원이라는 큰 틀에서 산학협동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과거 국립대 교수가 민간 기업 직원을 겸직할 수 없었으나 요즘은 할 수 있습니다. 또 대학 교수에게 특허취득에 적극 나설 것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학협동에서 새로운 발명이나 연구를 해 특허를 받을 때는 어떤 특정기업이 독점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합니다. 지식은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학이 산학협동이라는 미명아래 기업의 잡일을 하는 곳으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이총장〓70년대 산학협동이 대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일방적 관계였다면 현재는 대학과 산업체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산학협동은 대학이 창출한 지식을 사회에 응용하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인재와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고 일류대학과 일류 기업이 함께 발전합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대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죠.▽이총장〓

한일은 참 가깝고도 먼나라입니다. 주제를 바꿔 21세기의 한일 관계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아름답지 못했던 역사를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현실의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강조합니다. 상대를 정확히 알고 서로를 이해해야만 세계에서 함께 경쟁하고 협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가오총장〓민감한 문제입니다. 일본인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총장〓마지막으로 이제 21세기를 맞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남과 다른 나라 다른 세상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부탁하고 싶군요.

▽나가오총장〓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마음을 세계로 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편견이나 과거의 지식으로 사물을 보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정리〓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이기준 서울大총장 약력▼

△38년생

△61년 서울대공대 화학공학과 졸

△71년 미국 워싱턴대 공학박사

△76년 아태지역 공학교육학회 사무총장

△82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초빙교수

△90년 서울대 공과대학장

△92년 전국 공과대학장협의회장

△96년 한국공학한림원 원장

▼나가오 마코토 교토大총장▼

△36년생

△59년 교토대 전기공학과 졸

△66년 교토대 공학박사

△67년 교토대 교수

△76∼94년 국립 인종학 박물관 컴퓨터연구분야 팀장

△컴퓨터관련 국제학술잡지 편집장

△퍼플 리본메달 등 다수 수상

△97년 교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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