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벤처21]'벤처창업 5년'의 주역들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31분


한국 벤처기업의 뿌리는 어디이며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5년전 벤처기업협회가 창립될 때 회원사는 불과 20여개였다. 지금은 900여개를 넘어섰다. 이들은 스스로를 ‘벤처’라고 부른다. 요즘은 대기업들조차 ‘벤처정신을 가진 기업’이라며 벤처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벤처바람은 이제 불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향후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회계연구원 김일섭원장은 “97년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벤처기업종합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산업자원부가 관련법을 제정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제도권의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벤처기업이 성장궤도에 오르고 경제의 큰 축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초 코스닥 열풍이 불어닥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당시 세계화위원회의 보고서는 “창의적 기업가들이 주도하는 벤처기업은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창출하면서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면서 “각국은 미래의 기회를 선점(先占)하기 위해 벤처기업이 활발히 출현할 수 있도록 사회풍토와 제도를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900社 성업… 핵심은 인터넷분야 ▼

벤처기업가는 기업과 대표의 ‘나이테’에 따라 크게 3분된다. 미래산업 정문술사장을 포함해 나이가 50대 이상인 기업을 1세대, 메디슨 이민화회장을 포함한 40대를 2세대, 터보테크의 장흥순사장, 팬택 박병엽부회장 등 벤처의 주류를 이루는 20대와 30대를 3세대 벤처기업가로 부른다.

이들은 그러나 “벤처의 핵심은 기업가 정신”이라며 “나이나 기업연륜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올해 2월 벤처기업협회 회장직을 이민화회장(2세대)이 장흥순사장(3세대)에게 이양한 것은 급격한 세대교체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벤처기업의 세대교체는 인터넷 업종이 단연 ‘태풍의 눈’이다. 핸디소프트 안영경사장은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는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으며 인터넷 트래픽(통신량)은 100일마다 두 배가 되고 있다”며 “인터넷 비즈니스는 벤처기업 성장의 가장 기름진 토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은 재벌기업 이상의 기업가치를 자랑하는 로커스(통합메시징) 새롬기술(모뎀 및 인터넷폰) 다우기술(포털서비스) 다음(통합메시징) 등이 꼽힌다. 한아시스템(네트워크 시스템)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컴퓨터 보안시스템) 등도 급부상하는 기업.

▼ PSIA등 세계적 기술 도전 ▼

범주를 디지털로 넓히면 거의 모든 벤처가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 한글과컴퓨터가 시작한 메가포털서비스 ‘예카’에 117개 기업이 참여한 것은 폭발적인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장 가능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제조업 벤처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벤처기업의 80%는 제조업체”라며 “벤처기업의 주류는 향후 제조업종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래산업 정문술사장은 라이코스와 소프트포럼 등 인터넷 사업을 활발히 하면서도 “결국 제조업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주성엔지니어링 세원텔레콤 필코전자 스탠다드텔레콤 텔슨전자 휴맥스 등이 제조업을 대표하는 업체들.

세계적 기술도전에 나선 벤처도 적지않다.

원자현미경을 만드는 PSIA(대표 박상일) 메디슨(3차원 초음파진단기) 한광(레이저빔) 등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기술을 자랑한다. 일반에게는 생소하지만 윤호테크(대표 변호산)는 정전기 방지기술로 이미 세계적 기업에 올라있다.

▼ '교실밖' 창의교육이 밑거름 ▼

벤처기업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이인찬 연구위원은 “오늘날 벤처기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장기적인 교육투자의 결과”라고 풀이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150여명의 벤처기업가를 배출한 것도 창의와 토론 위주의 교육방식을 장기간 계속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된다. IMF 관리체제 이후 대기업에 있던 고급인력이 대거 떨어져 나온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벤처기업가 정신은 교실 중심의 주입식 암기교육보다는 창의적이며 자유로운 ‘교실 밖’의 분위기에서 싹텄다고 할 수 있다. 대학 동아리활동도 그중 하나.

유니코사(UNICOSA)는 74년 친목 형태로 출발한 뒤 84년 연합회를 결성하면서 인터넷 벤처기업가를 배출한 대표적 창구.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한 드림위즈 이찬진사장(서울대)과 그레텍의 송길섭대표(건국대), 아이네트(현 PSI네트) 공동설립자인 위의석씨(서강대) 등이 이곳 출신이다. 99년 동아일보 주최 아이디어 심사대상을 수상한 뒤 최근 ‘e브레인즈’를 설립한 김태은 대표(한양대)와 ‘팜골프’를 개발한 CE크래프트의 박범서사장(동국대) 아바타채팅으로 유명한, 매직하우스의 구준회사장(고려대), 홈페이지 개발업체인 CCR의 윤석호사장(한양대 안산) 등 유니코사 출신들은 인터넷 업계에 거미줄 같은 인맥을 형성했다. KAIST의 보안관련 동아리 KUS와 포항공대의 ‘플러스’는 ‘해킹 경쟁’을 벌이며 90년대초부터 국내 최고 수준의 컴퓨터 보안전문가를 ‘훈련’시켜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KUS출신 김휘강씨는 A3시큐리티를 창업했고 인젠과 소프트포럼 등 보안관련 선두권 벤처기업에는 동아리 회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벤처기업은 스스로 진화 발전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지원,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벤처의 개념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벤처는 비를 막고 거름을 줘야 성장하는 ‘온실형’이 아닌 ‘야생화’라는 뜻이다. KAIST 전산학과 이광형교수는 ‘21세기 벤처강국을 향하여’라는 저서에서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비난과 지탄을 받아온 재벌의 행태를 벤처가 답습해서는 안된다”며 “벤처기업들은 시작단계부터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기업윤리를 다져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수묵기자> 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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