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0돌 특집]뉴밀레니엄에 새롭게 읽는 창간사

  • 입력 2000년 3월 31일 22시 38분


1920년 4월1일. 동아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동아일보 창간사, 《‘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하노라.’

이 창간사는 독립운동가이자 당대 최고의 연설가였던 장덕수(張德秀)가 쓴 것으로, 동아일보의 창간 정신과 역사적 사명감이 당당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를 뛰어 넘어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민주주의의 새 시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강한 열망의 표현이었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던 2000만 조선인에게 삶에 대한 의욕과 조국 독립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었다.

이후 80년, 그 창간사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살아있는 시대정신’의 지표로 삼기에 충분하다. 동아일보 창간 80주년을 맞아 창간사를 현대어로 쉽게 풀어보고 시대를 초월하는 창간 정신을 되새겨 본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창간사를 풀어 쓴 것을 동아일보 80년사사편찬위원회와 문화부 이광표기자(시인)가 현대 감각에 맞게 다시 다듬었다.》

▼창간의 뜻을 널리 밝히노라▼

푸른 하늘에 태양이 빛나고 대지에는 맑은 바람이 분다. 산 머문 곳에 물이 흐르고, 풀과 나무 짙푸른데 갖가지 꽃이 활짝 피어나며, 새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니 만물에 생명과 영광이 가득하다.

동방의 아시아 무궁화 동산에 2000만 조선 민중은 밝은 빛을 보고 공기를 호흡한다. 아, 참으로 사는 듯하다. 부활이로다. 이제 온 몸의 힘으로 떨쳐 일어나 멀고도 큰 길을 떠나려 하니 그 길의 이름은 무엇인가. 바로 자유의 큰 길이다.

세계 인류 운명의 큰 수레바퀴는 다시 한번 돌았다. 차르(Czar·황제)는 가고 압제의 군주들은 몸을 움츠린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횡포는 노동주의의 도전을 받고, 거친 힘에 바탕한 침략주의 제국주의는 권리를 옹호하는 평화주의와 정의에 기초한 인도주의로 돌아서려 한다. 인민을 위한 자유 정치와 노동에 기초한 문화 창조와 정의 인도에 입각한 민족 연맹의 신세계가 열리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다. 우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어찌 이상의 하늘만 바라보고 현실의 땅을 잊으랴. 세계의 대세를 보면 한편에 새로운 세력이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와 대립하는 옛 세력이 있어 서로 투쟁한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모두 해방과 혁신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동시에 그것을 억압하려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으니 이러한 현실을 그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아아 새로운 것과 옛것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다툼이 어찌 이 시대만의 일이겠는가. 기나긴 인류 역사를 통해 늘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봄 햇살이 세상을 한번 비추면 쌓인 눈, 견고한 얼음은 녹고 만물이 생명의 눈을 뜨니, 누가 넘치는 그 봄 기운을 억누를 수 있겠는가. 이같이 새 것과 낡은 것의 충돌은 이미 새 것이 찾아올 때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요, 옛것이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이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 없으니 새로운 것이 반드시 이뤄지고 옛것은 또한 반드시 물러나리라.

하지만 이미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가 벌써 열렸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암흑의 시대, 투쟁과 출산의 고통을 치르고 우렁찬 새 문명의 파도와 밝디밝은 새 시대의 서광이 저 멀리 수평선에 나타나고 있음을 말할 뿐이다.

보인다. 그리고 보라. 수천만 남녀 민중이 신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바로 이러한 때에 동아일보는 태어났다. 아아, 그러니 동아일보의 탄생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돌아보건대 국권을 상실한 지 10년, 조선 민중은 한바탕 악몽을 꾼 듯하다. 사람이기에 어찌 사상과 희망이 없었으리요만 그것을 펼칠 길은 없었다. 사회인지라 어찌 집단적인 의사와 활력이 없었으리요만 그것을 이룰 길은 없었다. 민족인지라 어찌 문명의 고유한 특성과 생명의 미묘함이 없었으리요만 감히 드러낼 수 없었다. 부르짖고자 하나 입을 열지 못하고 뛰고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그 악몽에 2000만 조선 민중이 시달려온 것이다.

이는 곧 조선이 죽음의 땅이요 함정임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민중은 자유를 바랄 수 없었고 괴로움에 빠져 더러는 울고 더러는 분노했다. 어찌 그것이 조선 민중뿐이리오. 4000년 역사적 생명이 모두 분개했으니 이는 조선 민중이 홀로 펼쳐나갈 삶의 터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시대가 변해, 언론의 자유가 얼마간 주어지자 조선 민중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앞길을 이끌어 줄 친구를 열망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동아일보가 태어났으니 그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실로 민중과 시대가 부여한 힘으로 동아일보가 태어난 것이다.

이에 동아일보의 주된 뜻과 정신을 널리 밝힘으로써 창간사를 대신한다.

1. 조선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수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2000만 조선 민중 전체의 기관으로 자임하며 민중의 뜻과 이상과 운동을 사실대로 표현하고 보도하고자 한다.

2.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는 국체(國體)니 정체(政體)니 하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인류 생활에 기초한 하나의 이치요 정신이니 폭력을 배척하고 개인의 인격에 바탕을 둔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요, 국제 정치에서는 연맹주의요, 사회 생활에서는 평등주의요, 경제 조직에서는 신성한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를 말한다.

동아시아에서 보면 이 민주주의는 개별 민족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친목과 단결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정의와 인도를 승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평화를 의미한다. 폭력과 억압을 거부하고 양심의 권위와 인간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삶에서의 여러 관계를 규율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천하 인민의 행복과 영광을 위해 이러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3. 문화주의를 제창한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곧 부(富)의 증진과 정치의 완성, 도덕의 순수와 종교의 풍성, 과학의 발달과 철학 예술의 심원함 오묘함을 의미한다. 또한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세계 문명에 기여하게 하고 조선의 강산을 문화의 낙원으로 만들고자 한다. 문화주의야말로 조선 민족의 사명이자 생존의 가치라 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3000리 강산, 2000만 민중 속에서 태양의 찬란한 빛과 우주의 드넓은 생명을 실현하고 창달하여 자유를 키우고 늘리려 한다. 동아일보 창간의 주된 뜻은 첫째, 조선 민중이 각각 그 삶을 바르게 하고 서로 보살피고 화합하여 위대한 문화를 이룩하고 둘째, 세계 만민이 각각 그 자리를 얻어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어우러진 낙원을 건설하는 데 힘을 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앞 길은 매우 험난하다. 그 누가 동아일보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오직 민중의 친구로서, 민중과 더불어 생사(生死)와 진퇴(進退)를 함께하기를 기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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