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하는 “TV드라마 ‘마지막 승부’(1993년) 때 중학생이었던 팬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어 찾아온다”며 기분좋게 웃는다. 지난해 영화 ‘텔 미 썸딩’ 때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사코 피해 ‘대인기피증’이 있다는 말까지 들었던 그는 “영화 속 역할 때문에 내가 노출되면 안될 것 같아 그랬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예상과 달리 소탈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그와의 인터뷰는 ‘즐거운 파격’이었다.
▼"작품보다 돋보이고 싶지 않아요"▼
-‘인터뷰’에서 맡은 배역인 영희는 아주 단조로운 인물인데.
“그런 점이 매력이었다. 성격이 모호해서 파고들고 싶은 모험심같은 걸 느꼈다. 영화를 보고나니 내가 영화에 잘 녹아들어간 것 같다. 영화 자체가 돋보여야 한다. ‘심은하의 영화’를 할 때는 지났다고 본다. 앞으로 영화를 선택할 때도 그런 기준으로 할 거다.”
-그래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은 있을 것 같은데.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그 후 다른 영화에 녹아들지 못했다. 작품보다 돋보여서 작품을 흐려놓는 배우가 되고 싶진 않다.”
-영화 선택 기준도 이전과 달라졌나?
“예전엔 캐릭터가 분명한 시나리오를 골랐지만 지금은 작품의 메시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흥행성보다 작품성을 더 따진다. 어머니 의견을 많이 듣는데, 어머니의 감도 ‘대박’감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에게 지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려운 영화들을 고르는 걸 보면….
“아니, 난 쉽고 재미있고 편안한 영화를 좋아한다. ‘매트릭스’처럼 상상할 여지가 많은 영화가 좋고, 그런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이재수의 난’은 ‘엄마 영화’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의 권유로 출연했다.”
-연기를 할 때 계산을 많이 하는 편인가, 아니면 감각에 의존하는가?
“이성보다 본능과 감각이 중요하다. TV드라마 ‘청춘의 덫’에서는 계산이 많이 된 연기를 한 탓에 지금도 내가 보고 ‘저건 아닌데…’라고 할 때가 있다. 어머니는 내가 대본에 줄쳐가며 공부하기를 바라시지만 난 흐름을 받아들이기 위해 대본은 한 번 보고 덮는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대사를 외울 때에는 집중력이 최고도에 이르는 것 같다. 그건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연기가 정말 얼마나 힘 드는지 모르겠다”며 몇 번이나 되뇌었다.
-뭐가 그렇게 힘드는지….
“영화 한 편 끝내고 나면 기가 다 빠져나간다. 건방지게 들릴지 몰라도 신들린 무당의 기분을 알 것 같다. 다른 누구보다 관객에게 인정받고 싶고, 내 연기가 사람들이 잘 몰랐던 삶의 어떤 면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 연기를 하고 살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심은하는 매니저 없이 코디네이터만 데리고 나타났다. 매니저를 두지 않는 이유를 묻자 스스로에 대해 다짐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이 매니저다. 내가 알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도 날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더 강해지고, 더 정신차리고, 더 똑똑해지고 싶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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