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어떻게…어디부터…" 대기업 IT변신 고심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정보기술(IT)혁명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뭘 해야 하는 거지.”

올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에서 대기업 총수들간에 자주 오고가는 대화다.

대기업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다투어 ‘IT혁명의 적극적 수용’을 들었다. 실제로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e비즈니스, 정보통신산업, 벤처투자와 관련된 사업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간단치 않다. 문제의 핵심은 ‘불확실성’. 재계 관계자들은 “IT혁명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각 기업의 사업계획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이 때문에 고심하는 대기업 총수가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이런 가운데 IT혁명으로 일부 벤처기업이 눈부신 약진을 함에 따라 재계의 고민은 더 크다. 급성장하는 벤처기업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대기업 조직에 이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재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부서 100개중 1개를 벤처형으로 바꾸면 나머지 99개 조직은 그대로 와해되고 말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기업들은 벤처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서 벤처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 새로운 경영문화 등을 기존 사업과 연계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서 벤처의 활력을 기존 조직에 접목시키려 한다”며 “내부의 벤처형 사업도 분사화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15∼20%의 출자에 그치고 있어 경영권 확보를 위한 문어발식 확장과 무관하다는 게 재계관계자들의 설명. 오히려 벤처기업이 대기업 투자를 수용하면 대기업의 자금과 시장개척능력, 경영정보를 얻게 되므로 서로 이익이 된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 이사는 “벤처를 한다고 하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며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전략적 제휴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A그룹 관계자는 “시티은행의 경쟁자는 IBM이 될 수 있으며 코카콜라의 경쟁상대는 생수회사가 되는 시대”라며 “기존 인터넷업체인 야후를 모방하기보다는 야후와 제휴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벤처기업과의 제휴로 활로를 개척하려는 대기업에 대해 벤처기업인들의 반응은 ‘반신반의’. 그동안 신흥산업이 출현할 때마다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으로 해당 산업을 침식해온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벤처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벤처기업과 협력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전략적 파트너로 가야지 벤처시장을 먹겠다는 발상은 안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분참여를 통해 자본이득을 올리겠다는 발상은 투기꾼에 다름 아니다”라며 “재벌이 아니라도 벤처에 돈을 대려는 사람은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스스로도 벤처와의 제휴이전에 자기혁신이 필요하며 내부혁신을 통해 벤처기업을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경련 기업경영팀 이병익팀장은 “IT혁명은 시간싸움이므로 남의 것을 모방해선 안된다”며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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