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하루생활권으로 좁혀져 이제 너 나 할 것 없는 한지붕 공동체가 되고 있지만 평화는 여전히 불안한 기반 위에 흔들리고 있다.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이번에는 민족 종교 문명간의 갈등이 한층 심화되는 양상이다. 물질적 풍요와 부가 넘치는 또 다른 한편에는 기아와 질병이라는 음습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고 그 때문에 서로간의 질시와 증오심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반도는 이같이 불확실한 세기, 불안정한 지구촌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이미 지난 세기에 벗어버려야 할 냉전논리를 그대로 안고 아직도 남북한이 첨예한 군사적 대립을 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은 서로간의 역학관계를 최대한 이용하며 각자 다른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공동방위정책을 견고히 하는가 하면 이를 견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간의 전략적 제휴조짐 또한 만만치 않다. 남북한 관계는 이러한 4강관계를 결정짓는 핵심이면서도 그 4강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남북한 관계를 보면 긍정적인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남북한의 평화로운 공존과 민족의 화해 화합을 우선 도모하자는 우리의 주장에 평양당국이 수긍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가 하면 국제사회로 나오려는 그들의 발 빠른 움직임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만일 북한이 개방 개혁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남북한 관계의 청신호다.
그러나 그 때문에 4강간의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에 대한 우리의 대내외적 대비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섣부른 통일론을 얘기하기 전에 우선 상호신뢰의 둑을 튼튼하게 쌓아가면서 공존 공생 번영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본보 창간 80주년을 맞아 창설된 21세기 평화재단과 평화연구소는 새 세기의 새로운 흐름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남북한 관계의 역사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미 발기취지문에서도 밝혔듯이 본 재단은 인류공동체의 나아갈 바 이상과 비전을 재정립하며 한반도에 화합과 번영의 터전을 가꾸는데 헌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여기에 뜻있는 이들이 동참하고 성원을 보내준다면 그 성과는 더욱 값지고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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