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역 때문이었다. 당시 영남정권 아래에서 호남출신인 그가 더 이상 승진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능력이 아니라 출신지역이 승진의 기준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울분도 터뜨리고 비애를 느끼기도 했으나 출신지역의 벽은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DJ정권이 들어선 뒤 그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케이스는 수없이 많다. 과거 영남정권이 수십년 동안 계속되면서 군 검찰 경찰 일반행정부처 등은 물론이고 정부와 연관을 맺고 있는 무수한 분야에서 호남출신 엘리트들이 겪었던 좌절감은 듣기에 애처로울 정도다. 초임에서 일정한 직급까지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승진이 되지만 일반부처의 부이사관급 등 일정직급 이상으로의 승진은 능력이 아주 특출하지 않는 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져 버리던 현실. 비호남출신들, 특히 영남출신 동기생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호남출신이란 멍에 아닌 멍에를 지고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정권이 바뀌자 서로의 처지가 역전이 됐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지역감정과 호남출신의 요직독식이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DJ정권 출범이후 호남출신이 영남출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부분 메웠다’는 여론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편중 인사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능력이나 전문성보다는 출신지가 인선의 잣대가 됨으로써 공직사회가 흔들리고 지역감정을 심화시켜….’
총선이 본격화되면서 신문지상에 등장하고 있는 야당의 이같은 선거광고는 이 때문에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매우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어떤 정권하에서건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사상 특혜를 누리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는 지역감정을 유발시키고 화합을 깨어 국가의 미래지향적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영호남을 비롯한 각 지역의 주민들이 상대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봐야 될 때가 아닐까.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하기에 앞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선행돼야만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모색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남사람들에게 호남출신들이 과거에 느꼈던 아픔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하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필자 스스로가 영남(마산)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르지만.
정동우<사회부 차장> foru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