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800억 금싸라기 따에 녹슨 철근만…

  • 입력 2000년 4월 4일 19시 51분


평당 2000만원이 넘는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 4000여평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서울시와 서초구청, 땅 주인이 격렬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문제의 땅은 서울 강북에서 반포대교를 건너 강남성모병원 사거리를 지나다보면 오른쪽 에 보이는 4000여평. 70년대 이후 이 주변이 고속버스터미널 병원 호텔 등으로 개발된 뒤에도 이 땅은 언덕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왔다. 개발을 원하는 땅 주인과 이에 반대하는 구청간의 지루한 법정다툼 끝에 지난해 이 땅을 반으로 나눠 한쪽에 공원을 조성하고 다른 쪽에는 오피스텔을 짓는 공사가 시작됐지만 서울시가 언덕 형태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공사를 중지시켜 현재 이곳은 언덕이 일부 깎인 채 1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사거리. 성모병원에서 팔레스호텔쪽 맞은편에 간이 담장으로 둘러싸인 넓은 언덕과 평지가 보인다. 완공 예정일이 2000년 4월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지만 공사가 중단된 채 현장에는 인부들이 사용하던 간이사무실과 철제 빔, 공사장비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또 반포로 변의 언덕은 이미 깎아 내린 상태였으나 동궁아파트쪽 언덕은 원형 그대로였다. 언덕을 일부 깎아 내린 곳에는 흙과 바위가 그대로 방치돼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안전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이 땅은 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도심 속의 섬’이 돼 버렸다. 잠수대교와 인접한데다 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잡고 있는 요지이지만 이 언덕 위에 당시 북한군이 잠수교를 건너올 경우에 대비한 포대(砲臺)가 자리잡고 있어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 커다란 광고판 뒤에 숨어있던 이곳의 포대는 주위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잠수교가 시야에서 가려지자 대공포대로 바뀌었다가 결국 80년대 초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이 땅의 개발문제가 제기된 것은 95년. 소유주인 효성그룹이 오피스텔을 짓기 위해 서초구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서초구가 이를 거부하면서 서초구와 효성간에 지루한 송사(訟事)가 시작됐다. 효성측은 건축허가 불허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이 땅의 용도가 일반주거지인 만큼 건축을 막을 근거가 없다며 효성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초구는 소송에서 지자 이 땅을 공원부지로 묶었다. 효성측은 다시 소송을 제기해 98년 공원지정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게다가 구가 형질변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하루 5000만원의 강제이행금을 물리도록 했다.

소송에 두번 패한 서초구는 결국 효성측에 ‘4000여평의 부지 가운데 절반은 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반은 오피스텔을 짓자’는 타협안을 제시, 지난해 3월 공원 조성과 오피스텔 건축을 위한 공사가 시작됐다.

서초구와 효성측의 합의로 이 땅의 개발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으나 이 땅 바로 옆에 400평을 갖고 있던 서울시가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공원을 만들려면 서울시 소유 400평의 작은 언덕을 깎아버릴 수밖에 없는데 서울시가 언덕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라며 공사를 중지시킨 것.

서초구는 서울시의 요구대로 언덕 형태를 보존한 채 공사를 하면 공원 전체가 45도 이상의 급경사가 돼 시민의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공사 강행을 주장하고 있다.

또 동궁아파트 주민들은 공사가 중단되자 깎다만 언덕이 무너질 수 있다며 빨리 공사를 계속해 언덕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당초 계획대로 공원을 조성하지 않으면 오피스텔을 짓는 공사도 못하게 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공원위원회를 열어 현장 답사와 함께 재심의를 하기로 했으나 서초구와 주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서정보·이명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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