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황금곰상 받은 대작▼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매그놀리아(Magnolia)’는 끊임없이 엇갈리는 비극적 인연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의 죄책감과 깊은 내상(內傷), 그리고 상처의 치유와 소통을 향한 애절한 갈망을 그린 대작이다. ‘부기 나이트’로 주목받기 시작한 29세의 젊은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11명의 인물이 하루 동안 겪는 9개의 에피소드들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정교하게 직조(織造)하면서 미국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영화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TV를 매개로 얽혀 있다. 죽어가는 방송재벌 얼(제이슨 로바즈 분)은 일생을 참회하며 자신이 버린 아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여자를 정복하는 법을 가르치며 TV스타가 된 프랭키(톰 크루즈)는 아버지 얼을 격렬히 증오한다. 또 얼의 방송국에서 30년째 퀴즈프로를 진행하는 명사회자 지미 게이터(필립 베이커 홀)는 가출한 딸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와 화해하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부모 자녀간이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이라 할 가족 관계에서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녀들은 그걸 감당하지 못해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친다.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즈음,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하늘에서 우박처럼 떨어지는 개구리들은 성경 출애굽기에서처럼 단죄를 뜻하고 극한에 이른 인물들의 감정적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11명의 하루동안 애피소드▼
그러나 감독은 이 비극의 드라마 속에서도 희망의 자리를 남겨둔다. 악행을 일삼던 사람들은 모두 과거를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고, 악행으로 상처받은 사람들도 치유와 소통을 향한 갈망를 끝내 거두지 못한다. 지치고 섬처럼 고립된 사람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에이미 만의 ‘Wise Up’을 따라 부르며 하나로 연결되는 장면, 자기파괴의 극단으로 치닫던 클라우디아가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눈물어린 눈으로 미소짓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연출-음악-연기력 돋보여▼
‘매그놀리아’는 복잡한 이야기를 빈 틈 없이 쌓아올린 감독의 연출력, 감정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에이미 만의 노래,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부기 나이트’를 보고 출연을 자청해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톰 크루즈는 비록 상을 타진 못했어도 잊지 못할 명연기를 보여준다.
긴 상영시간(3시간8분)과 복잡한 구조,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에 낯설어 할 관객도 있겠지만 얽히고 설킨 관계의 그물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노력 이전에 마음이 앞서 반응하게 되는 영화. 18세 이상 관람가. 15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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