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드라큘라'

  • 입력 2000년 4월 12일 19시 44분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도 아랑곳 않고 세계인의 음험한 상상력을 흡입하는 흡혈귀의 이야기의 원조, 지구상의 모든 괴기 공포영화의 바이블로 삼고 있는 소설 〈드라큘라〉(1897)의 탄생지는 트란실바니아라는 유럽 내륙 땅이 아니라 섬나라 영국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작가 브램 스토커 (Bram Stoker)의 창작물이다.

날카로운 송곳니에 그림자가 없고 거울에 모습이 미치지 않은 괴물,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거인, 음식 대신 인간의 혈액으로만 사는 드라큘라 이야기는 으스름 달빛, 늑대 우는 밤, 십자가와 마늘의 효능과 함께 모든 세계인의 상식이다.

변신을 자유자재로 해내는 초능력에다 동물을 다스리는 수성(獸性)을 갖춘 괴인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나 보편적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 새하얀 소복(素服)과 갈라진 무덤, 은행나무 침대의 전설 그리고 여고괴담 만큼이나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초능력과 수성에 대한 동경을 교묘하게 자극한다.

노골적으로 드라큘라의 자손임을 선언한 영화도 열 두 편도 넘는다. 수많은 드라큘라 영화 중에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작품 《드라큘라》(Bram Stoker's Dracula, 1992)는 가장 원작에 충실한 영화이다. 원작을 자세히 읽은 독자라면 이 소설이 단순한 괴기소설이 아니라 구질서의 몰락과 신 절서의 대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심각한 사회소설임을 깨달을 수가 있다.

양민의 고혈(膏血)을 빨아 연명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병든 귀족사회를 상징한다. 금잔 속에 담긴 향취나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에 쌓인 진미의 안주는 만 백성의 살점일저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라는 춘향전의 고발이 연상된다.

온갖 지혜와 용기를 동원하여 지상에서 드라큘라를 영원히 제거하는 여섯 사람의 남녀는 중산층의 도덕과 윤리를 대변한다. 부와 사회적 지위가 세습되는 도덕적으로 병든 귀족사회를 몰락시키는 데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자수성가 직업인들이 앞장선다. 이들의 직업을 의사, 변호사, 또는 선생으로 설정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법은 근대의 상징이다. 드라큘라의 제거에 법률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원작에 없는 삽화 장면이 등장한다. 1462년 터키 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비잔틴 건축의 상징인 성소피아 성당의 둥근 돔이 달빛에 어슴푸레 비친다. 기독교 세상이 종언을 고하고 이슬람의 세계가 대체한 것이다.

기독교의 성상이 제거되고 성모의 벽화 프레스코 위에 회칠이 가해지는 역사를 으스름 달밤에 비친 돔으로 상징하는 기술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근에 와서 로마교황청과 터키정부의 협력으로 하기아 소피아 내벽에 오백 년 동안 회교의 이름으로 덧씌운 회칠을 벗기고 원래의 벽화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장면은 늑대 우는 달밤이라는 드라큘라의 활동시간대를 교묘하게 조합시킨 장치로 해석된다.

루마니아의 백작 드라큘라는 신혼의 아내를 두고 출정한다. 황혼, 장중한 음악, 창대(槍臺) 끝에 거꾸로 걸린 즐비한 시체군(群) 사이로 말을 타고 질주하는 기사의 모습이 숨가쁘다. 아내는 잘못 전해온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 성벽 아래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아내의 시체를 교회 의식에 따라 매장하지 못한다는 성직자들의 결정을 남편은 수용하지 못한다. 오로지 신만이 생명을 주고 뺏을 권능이 있는지라 자살은 신의 권능을 침해하는 방자한 죄악이다. 그러므로 자살자는 기독교 의식에 따른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 중세 교회법의 철칙이다.

신과 교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가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그게 신의 뜻이라면 어둠의 힘으로 신에 복수하겠다. 맹세의 의식으로 젊은 백작은 칼로 십자가를 찔러 흐르는 피를 마신다.

카메라는 450년 중세의 다리를 건너뛰어 1897년 런던의 한 정신병원이 입원중인 환자, 렌필드를 두고 논의를 벌이는 두 변호사를 비친다. 촉망받던 그가 (원작에는 59세의 중노인) 갑자기 정신이상의 증세를 보인 것이다.

그는 거미와 참새를 잡아먹고 식단으로 고양이고기를 주문하고 이따금씩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며 누군가의 현신을 기다리는 병자이다. 가난한 젊은 변호사 조나단 하커는 고용주로부터 내륙지방 출장을 지시 받는다. 드라큘라백작이 영국 땅에 구입한 부동산의 소유권 취득절차를 마무리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먼저 이 일에 관여했던 렌필드가 왜 정신이상이 되었느냐는 하커의 질문에 고용주는 렌필드의 발병은 순전히 사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덮어버린다. 하커는 고아 출신의 학교선생인 약혼녀 미나를 뒤에 두고 트란실바니아로 떠난다. 기차와 마차를 번갈아 탄 긴 여정 끝에, 음험한 늑대소리가 교착하는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는, 실로 오지 중의 오지에로의 위험한 여정이다.

기차머리가 뚫는 터널의 둥근 형상은 달과 소피아성당의 돔을 연상시킨다. 가면을 쓰고 마중 나온 검은 손의 성주의 안내를 받고 하커는 괴기의 성 속에 감금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하커와 미나의 일기가 교차하면서, 일기에 담긴 의문이 풀리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쟁의 시대는 끝났다. 우리 가문의 시대도 끝났다. 라는 드라큘라의 변은 그 자신이 인간의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하던 구시대의 화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인간의 피로 연명하는 드라큘라는 자신의 고향에는 사람수가 적어 사시사철 보릿고개다. 그래서 온갖 식량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영국 땅으로 이주하려는 것이다.

이제 런던으로 이주하여 사람들과 함께 삶과 죽음을 나눌 계획 이라는 말은 법과 근대의 길을 걷고 있는 영국 땅에서 봉건 귀족 사회의 전통을 고수하는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 낼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자신의 성에서 가져온 흙이 없으면 연명할 수 없는 트라큘라의 특성은 구체제가 잔존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토양, 한 마디로 하자면 봉건체제일 것이다.

하커를 성에 감금한 드라큘라는 나무관 속에 흙의 형태로 가장한 50인의 종복들과 함께 영국에 상륙한다.

선장의 항해일지와 때아닌 폭풍과 런던 동물원에서의 늑대 실종 등 각종 이변이 일고 정신병원의 레인필드가 생명의 신이 다가 오고 있다. 고 외친다. 위장한 화물의 수령인 빌링턴도 법률가이다.

빌링턴은 구질서에 기생하는 법률가를 상징한다. 마땅히 구질서와 함께 몰락했어야 하나 시대의 파도를 교묘하게 타고 넘는 것이 법률가의 장기이다.

칠흑 같은 밤, 폭풍우 속에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루시는 드라큘라에게로 향한다. 루시는 방탕적인 열정의 소유자이다. 그녀에게는 세 사람의 구애자가 있다. 미국 텍사스 출신 칼은 성적 능력과 돈을 상징한다. 칼 이외에도 귀족청년과 의사인 잭이 있다. 최종적으로 잭과 약혼하나 여전히 모든 사내에 대해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 귀족사회의 허영과 사치와 방탕이 몸에 밴 루시가 드라큘라의 첫 번째 희생물이 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루시의 마음속에 신분사회가 주는 악의 매력에 대한 동경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농염한 이야기를 즐겨 읽으면서도 짐짓 밖으로는 구역질나! (disgusting)라고 말하는 위선 속에 구악이 자리 펴는 것이다.

영화 〈드라큘라〉는 애절한 악마의 사랑 이야기를 접목시킴으로서 더욱 관객을 사로잡는다. 하커의 약혼녀 미나는 드라큘라의 환몽의 대상이다. 아득한 옛날 그녀가 죽었다. 죽은 그녀가 부럽다. 나는 삶이 고통스럽다.

하커의 방에서 미나의 사진을 훔쳐본 드라큘라는 이렇게 독백한다. 마치 죽은 아내의 현신을 보듯이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의 미몽을 더욱 부채질한다.

런던에 온 드라큘라는 미나에게 접근한다. 《햄릿》의 공연이 열리고, 새로이 탄생한 활동사진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비행질하는 런던의 웨스트 엔드 (West End), 선글라스를 쓴 드라큘라가 미나의 앞에 나타나서 자신을 사카이 왕자 로 소개한다.

당신을 만나러 시간의 강을 건너 왔다. 라고 진한 병든 시인의 고백을 토해 낸다. 저항할 수 없는 마력에 끌린 미나는 사카이 왕자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둘의 정사 직전에 늑대가 나타나고, 혼비백산하는 관중, 늑대를 달래는 사카이 왕자, 늑대를 포옹하는 미나.

당신의 목소리. 꿈속에서 위안을 주는 그 목소리. 아! 당신의 공주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그녀는 강물. 슬픔이 가득 찬 강물.

오필리어의 시신을 건진 그 공주의 강 에서 건진 보석을 미나에게 건네주는 드라큘라. 『햄릿』의 절묘한 차용이다.

나는 생명도 영혼도 없는 존재이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드라큘라의 피를 받아 마시고 함께 춤추는 미나. 살아있을 때는 드라큘라는 위대한 인물이었소. 이제는 죽어야 할 때요.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에요. 미나의 매달림이 애처롭다.

난관을 극복하고 하커와 결혼한 후에도 꿈속의 샤카이 왕자를 갈구하는 미나에게서 끈질진 구악의 굴레를 느낀다. 일단 악의 체제 속에 몸을 들여놓는 사람은 그 악이 주는 마력에 도취되기 십상이다. 드라큘라의 독아의 희생물이 된 미사자(未死者·Undead) 들은 밤이면 관 밖으로 걸어나와 먹이를 찾는다. 구체제의 시녀가 된 사람은 빌링턴 변호사처럼 그 체제에 기생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십상이다.

드라큘라의 퇴치와 미나의 영혼의 구제는 반 헬싱의 강의 장면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매독과 문화의 공존을 강의하는 반 헬싱박사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들 두루 갖춘 인물이다. 의사, 신학자, 역사학자, 철학자인 동시에 법학자이다. 헬싱의 예에서 보듯이 법학은 진정한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종합 학문이다. 과학, 의학 철학, 그 모든 지식의 체계를 사회적 제도와 연결하는 합리적 이성이다.

작가는 헬싱의 의학과 범죄학 지식이 도주하는 드라큘라의 퇴로를 차단하고 심장에 십자가로 말뚝박아 죽임으로써 인류를 괴물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법률가의 시대적 사명을 강조한다.

헬싱은 드라큘라는 내가 평생을 추적해온 원수다. 루시는 단순한 드라큘라의 피해자가 아니라 첩이다. 라고 닥터 잭에게 말한다. 헬싱은 드라큘라에 대해 사원(私怨)을 품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의 시대적 소명은 오로지 병든 봉건, 귀족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루시가 드라큘라의 첩이라고 공언하는 것도 봉건사회에 기생하는 집단에 대한 평가일 따름이다.

헬싱이 밝혀내는 드라큘라의 비밀 또한 시대적인 것이다. 이슬람 적군의 가죽을 벗기고 피를 마신 그 야만적 역사의 죄악을 씻어내는 일이야말로 근대 지성인의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새 천년 벽두에 로마 교황청에서 십자군 원정 시에 저지른 기독교인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가 발표되었다.

원작에서처럼 법률가들이 괴물퇴치에 앞장서야 한다. 법의 시대, 이성의 시대에 사회 개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법률가들이 드라큘라의 이빨에 물려 흡혈귀가 되면 세상은 끔찍한 종말을 맞을 뿐이라는 무겁디무거운 메시지를 영화 《드라큘라》에서 읽을 수 있다. 백여명의 변호사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선거 날에 볼만한 영화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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