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민운동과 '그 얼굴'들 퇴장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08분


4·13총선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펼쳐진 시민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은 결과적으로 정치판의 물갈이에 나름의 위력을 떨쳤다고 볼 수 있다. 총선시민연대측의 자평(自評)에 의하지 않더라도 당대표 당3역 장관 등을 지낸 다선 중진들을 떨어뜨린 큰 요인의 하나가 바로 낙선운동이라는 점은 쉽사리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이른바 집중낙선운동 대상으로 분류된 22명 가운데 15명이 떨어졌다. 나머지는 영남의 한나라당 5명, 전북의 민주당 1명 등으로 지역구도의 보호막 속에 낙선운동 바람을 모면한 케이스다.

‘집중대상’에 걸려 낙선한 인사들 스스로가 화려한 경력이나 현역의원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표차로 무너지고 만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시민단체의 작용 때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또 전체적으로는 시민단체의 낙선 리스트에 오른 86명 가운데 50명 이상이 떨어졌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 정치 사이드의 일방적인 ‘저질’ 공급에 불만을 토로하고 거기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참아오던 정치의 ‘소비자’(유권자)들이 들고일어나 본때를 보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정치사적인 의미가 있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대한 들끓는 불만과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에의 기대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으로, 한편으로는 재산 납세, 병역 및 전과기록을 공개하는 제도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런 혁신적 요인들이 표심을 자극해 정치판의 무해무득한 ‘중진 거물들’을 대거 퇴출하고 신인들을 맞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유권자의 손으로 ‘썩은 정치의 주역’이자 정치의 품질 개선에 무관심한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거물들을 인위적으로 퇴장시키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환경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는 어떤 존재도 결국 타율적으로 도태 퇴출되고 만다는 무서운 이법(理法)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비극적인 퇴장은 이번에 선택된 모든 당선자들에게도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정치개혁운동은 선거철의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고 바람직한 정치가 자리잡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낙선 운동과정에서 드러난 선거법과의 상충, 선관위 직원들과의 충돌 같은 법률적 제도적 문제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단체측도 낙선운동 과정의 실수나 문제점을 겸허하게 검토하고 재점검해서 바람직한 정치쇄신운동의 틀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이번의 시금석 같은 성과에 자만해서는 안된다. 시민에 의한 정치 바꾸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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