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 개발팀 김명철(27) 이준정 배근호 김종엽씨(26). 모두 항공대 출신인 이들은 자정을 넘기면 슬그머니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로데오거리로 나선다.
▼내복 슬리퍼차림 외출…로데오거리의 '이방인들'▼
‘날밤’을 새우기 앞서 정신을 차리겠다는 의도. 또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늘씬한 아가씨들로 인해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을 찾아보려는 ‘응큼한’ 생각도 있다
바바리코트를 펄럭이며 거니는 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만화영화의 ‘독수리 4형제’. 그러나 바바리코트를 입는 이유는 멋보다는 마땅한 외출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변두리’(항공대가 있는 수색)에서 ‘중심’으로 진출한 지 4개월째. 하지만 그들에게 강남은 여전히 낯설다. “8000원짜리 커피를 처음 보았어요.”(배근호) “현금지급기에서 2만원을 찾는 데 10대 여자아이들이 100만원을 농담삼아 찾더군요.”(김명철)
한번은 대낮에 내복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고 우르르 햄버거 집으로 몰려갔다가 손님들의 눈총을 산 적도 있다. 며칠 밤을 새워 부스스해진 얼굴과 찌든 냄새 때문이었다.
▼"아이디어 뜨면 바로 작업 집에갈 생각 못해요"▼
그러나 서울 강남의 ‘주인공’은 이제 ‘오렌지’족에서 ‘벤처리스트’로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그들은 느낀다. 돈 대신 ‘죽을 각오’로 일하는 젊은이들이 강남의 한복판에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자지 않으면 일을 끝내지 못합니다. 이불 속에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작업을 해요.”(배근호) “각자가 ‘마지노선’입니다. 도와줄 사람은 없어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끝장입니다.”(김명철) “일주일간 잠못자고 고민하다 일을 해결했을 때…. 이맛에 벤처를 합니다.”(이준정)
이들은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솔직히 영어를 잘 못해요. 그래서 영어시험 보는 대기업에 못갔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짜는 일은 자신있어요…”(이준정) “이곳에선 신입사원의 의견이 즉각 반영됩니다. 대기업과 달라요. 신입직원과 몇마디 하다 학번이 아래라는 사실을 알면 대뜸 반말을 해요. 눈치볼 일이 없어요.”(김명철)
그들에게는 집은 일주일에 한번쯤 빨래감을 싸들고 가 온종일 잠에 곯아 떨어질 수 있는 ‘쉼터’. 일부 직원의 부모들은 아예 회사로 ‘면회’를 온다.
이들은 대학 동아리식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즐긴다.
양말을 빨아 컴퓨터 모니터 위에서 말리는 경우도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사무실 분위기는 시끌벅적한 장터같다. ‘잡음은 생명의 상징’이라는 게 송길섭사장의 생각이다.
▼이달말 서울벤처밸리 입성▼
이달말 그래텍은 벤처기업이 집중된 테헤란로로 이사한다. ‘구경감’이 많은 로데오거리를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벤처의 중심으로 진입한다는 사실에 마음 설레고 있다. ‘진짜 독수리’로 비상할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며….
<최수묵기자>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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