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어느 나라의 통일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45분


이 나라도 열강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됐었다. 북쪽은 1918년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고 남쪽은 1939년 영국에 할양됐다. 북쪽은 62년 군부 쿠데타로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남쪽은 67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표방하는 민족해방전선이 정권을 잡았다. 우리와는 반대로 북은 자본주의 국가가, 남은 공산주의 국가가 들어선 것이다. 그들 역시냉전시대에는 극심한 체제경쟁을 펼쳤다.

▷남북으로 분단된 이 나라의 통일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79년. 북측 대통령이 남측을 방문,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인구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북측대통령이 남쪽 수도를 찾아간 것이다. 그 이후 양측은 유전을 공동개발하는 등 경제적 교류를 넓히면서 통일헌법을 만들고 90년 마침내 통일을 선포하는 데 성공했다. 첫 정상회담이 있은 지 11년만이다. 그동안 정상회담만 해도 10여차례나 열렸다. 물론 이들의 통일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동구 공산권의 몰락이었다.

▷이 나라의 통일 방법도 이채롭다. 통일을 선포한 이후 곧바로 국정을 이끌 5인의 대통령위원회를 설치했다. 대통령위원회는 인구비례에 따라 북측 3인, 남측 2인으로 구성하고 통일국가의 초대 대통령은 북측이 맡았다. 301명의 새 의회도 구성했다. 그러나 국가통합이 결코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94년 5월 남측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다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남과 북은 내전상태에 들어가고 2개월간의 전쟁 끝에 남측 반란군이 굴복했다. 중동의 예멘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완전한 통일을 이룩했다.

▷예멘의 통일여건은 우리보다 훨씬 좋았다. 6·25전쟁과 같은 대대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었는 데다 분단의 이념적 갈등 또한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열강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도 지금의 한반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예멘은 정상회담이 있은 지 15년만에 그것도 한차례의 내전을 겪고 나서야 완전한 통일을 이룩했다. 예멘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 있는 우리는 이제 겨우 정상회담의 실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조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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