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對話의 큰 政治를 하라

  • 입력 2000년 4월 20일 21시 06분


정말 오래간만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영수회담이 24일 열리게 됨으로써 오랜만에 여야가 반목과 대립을 벗어나 대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말로만 협조 반복말아야

이번 회담은 김대중정부의 후반부를 규정할 16대 국회의 모습이 결정된 다음에 이루어지는 회담이라는 점에서, 87년 이후 한국정치를 규정해온 다당제가 해체되고 양당체제가 등장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첫 양당총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나아가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여야 영수회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번 영수회담의 성립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야당을 자극해 대치정국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남북정상회담까지 한시적 조치인지는 모르지만, 김대중대통령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 4·13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왜곡해 제1당을 차지하는 편법을 택하는 대신, 야당과 대화를 통한 큰 정치로 정국을 풀어나가겠다는 선택을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회담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의 초당적 협조방안을 주의제로 해 정국운영에서 여야협조방안 등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당연히 논의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이 이상의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선 야당우위의 양당체제, 특히 어느 누구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야당우위의 양당체제와 관련해 국정에 대한 야당의 초당파적인 협력과 건설적인 비판을 전제로 정치대립의 가장 큰 불씨인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가시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둘째, 김대통령은 병역비리, 선거법 위반사범 등 정치인관련 사안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이총재는 방탄국회 등을 통한 소속의원의 부당한 보호 자제를 약속해야 한다. 사실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영수회담 이후이다. 김대통령과 이총재는 여러 차례 영수회담을 한 바 있고 그 때마다 입을 모아 협력과 대화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같은 약속은 곧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더 큰 대립과 반목이 이어졌다. 이는 야당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정략적인 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리고 야당이 방탄국회 등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번 영수회담이 이같은 과거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수사와 수사결과에 대한 승복을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셋째,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심각한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고려해 상징적 의미에 그치겠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호소하는 두 지도자의 공동선언을 만들어 함께 발표해야 한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여러 방안들을 논의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범국민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합의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넷째, 미진한 정치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정치개혁의 합의이다. 사실 지난 총선 직전에 이루어진 정치개혁은 한국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정당민주화 등 정치개혁의 핵심문제들은 그대로 놔둔 채 총선 일정에 쫓겨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감이 크다. 따라서 이제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합의 바탕 개혁 추진을

다섯째, 총선이 끝남에 따라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기업 민영화 등 제2차 구조조정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초당적 국민적 논의틀을 만들 것을 합의해야 한다.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극복 등 여러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등 많은 부작용을 배태했고 총선과정에서도 국부유출론 등이 쟁점이 됐다. 총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새 국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빈부격차의 해소와 실업문제의 해결을 들었다.

따라서 21세기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모형에 대해 초당적 국민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같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여야영수간의 화해는 사상누각의 형식적 평화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와 여야관계에 정말 봄은 오고 있는가? 아니 단연코 봄은 와야 한다. 그래 봄이다.

손호철(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