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울대 94위'의 의미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00분


대학의 연구능력을 보여주는 국제 과학논문인용색인지수(SCI)에서 서울대가 처음으로 세계 100위 안에 진입했다. 이 지수는 세계 3650종의 유명 학술지에서 세계 각 대학 교수들의 논문이 얼마나 많이 게재됐는지를 집계하는 것으로 대학의 연구역량을 비교 평가하는 국제적인 기준이다. 서울대는 97년 1395건의 논문이 실려 126위에 머물렀으나 98년에는 1671건으로 94위에 뛰어오른 것으로 교육부 최근 자료에서 밝혀졌다.

이번 조사결과는 대학사회 안팎에서 비판을 받아온 대학들의 침체된 연구분위기에 뭔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대학도 순위가 함께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 대학들의 갈길이 아직도 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조사에서 1위는 미국의 하버드대, 2위는 일본의 도쿄대가 차지했다. 서울대를 포함해 한국과학기술원 연세대 포항공대 고려대 등 이른바 국내 ‘빅7’대학의 게재논문 수를 모두 합해도 2위인 도쿄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진국 1개 대학보다도 못할 만큼 초라한 것이 국내 주요 대학들의 연구력이다.

논문의 질적인 측면을 따지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한국은 국가별로 집계한 SCI지수에서 세계 16위이지만 인구 1만명당 게재논문 수에서는 세계 31위로 떨어진다. 또 발표논문이 다른 학자들에 의해 인용되는 횟수는 더욱 낮은 세계 61위이다. 논문을 활발하게 발표하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충실한 내용을 담느냐도 시급한 과제다.

학계 일부의 지적대로 SCI지수가 대학 연구능력을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는 만큼 대학들은 이번 결과를 놓고 좀더 분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울대 등 이른바 유명 대학에는 전부터 정부 예산에서 거액의 연구비가 집중적으로 지원되고 있고 ‘두뇌한국(BK21)’사업을 통해 1조원이 넘는 액수가 새로 지원될 예정이다. 이처럼 엄청난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대학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고 낭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점에서 정부는 대학들의 연구비 집행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낙후된 연구력이 교수들 책임만은 아니다. 대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아직도 학생들의 ‘취업 준비기관’ 정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학의 핵심 기능이 선진국처럼 연구와 교육쪽으로 전환되도록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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