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해병대의 디지털 상륙작전은 98년 '인터넷 해병전우회' (rokmc.com) 사이트의 개설로 시작되었다. 현재 이 사이트의 조회수는 52만 8천000회. 573기 동기회(myhome.netsgo.com/mj7836/marine.htm), 재(在)인하 해병전우회(marine.mr4u.com) 등 기수, 대학, 지역별 사이트도 눈에 띤다. 개인홈페이지도 많다. 그 중 김학진씨(병 732기)의 해병혼 (www.uos.ac.kr/~hakjin/)은 98년 8월 이후 조회수 10만을 돌파했다. 또 포털사이트마다 대화방 수준의 해병대 e동호회도 적지 않다. 명실공히 '디지털 해병대'가 창설된 셈이다.
그런데 최근 디지털 해병대가 진가를 발휘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나 할까. '해병전우 전격 구출작전'이 그것이다. 해병대를 만기 제대한 김경호씨(27·병 731기)씨는 1년전 몸 속에서 새 피를 만들지 못하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종의 혈액종양으로 한가닥 희망은 골수이식 뿐이었다. 1년 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골수기증자를 구했지만 기증자의 혈액형이 흔치않은 AB형이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 30명은 있어야 했다. 가족들은 경찰기동대 등을 찾아 '피말리며' 피구하기 노력을 계속했지만 수술예정일까지 30명분의 혈액 혈소판을 확보하기란 어림없었다.
생각다못한 경호씨의 누나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병대 인터넷 사이트를 두드렸다. 그리곤 한 통의 e메일을 띄웠다. 3월 30일이었다. 그날로 해병대 사이트 게시판은 뜨겁게 달구어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김해병 구출작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사연은 현역 및 예비역 해병대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국내는 물론 뉴욕, 보스턴, 토론토, 심지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도 돕겠다며 e메일이 날아들었다. AB형 해병대 장병 730여 명이 혈소판 기증을 자원했고 헌혈증을 내놓은 사람들만 1100여 명이 넘었다. 이갑진 전 해병대사령관과 김명환 현 사령관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모든 일이 4월 5일까지 단 엿새동안 인터넷을 통해 벌어졌다. 김해병은 결국 7일 골수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해병대는 추가수혈을 위해 매일 두명씩의 장병을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
아날로그집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해병대가 디지털 상륙작전을 감행해 결국 '귀신잡는 해병'이 '디지털잡는 해병'이 되었다. 그리고 디지털잡은 해병은 인터넷상에서 놀라운 전우애를 실증했다. 해병대식 '디지털-휴머니즘'의 개가였다. 디지털세상은 사람들을 컴퓨터안에 가두어놓은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열린 연대성(solidarity)의 세계다. 디지털의 꽃, 인터넷은 포르노의 유혹과 자본의 시장논리만 넘실대는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부여잡은 손과 어깨동무한 따뜻함이 있다. 그곳은 분명 또 하나의 삶터다.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다음호 주제는 <만국의 네티즌이여 단결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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