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病깊은 투신권 결국 '공적자금 투입'

  • 입력 2000년 4월 25일 19시 49분


투신권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방침이 공식화됨으로써 투신권의 천문학적인 부실이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정부가 투신권 처리에 소매를 걷은 것은 대표적 기관투자가인 양대 투신사의 신뢰 회복 없이는 주식 채권시장의 안정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실탄’인 공적자금 조달 방안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수조원대의 공적자금이 땅에 떨어진 투자가들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왜 ‘공적자금’인가〓한투와 대투는 대우채권 손실을 반영하고 신탁펀드의 부실채권을 회사(고유계정)가 떠안으면서 각각 3조5000억원과 2조원 정도의 부실에 짓눌려왔다.

양사는 “돈을 맡긴 고객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대우채의 환매 제한 사태와 투신권의 펀드수익률 조작행태가 시장신뢰에 결정타를 가했던 것.

신뢰 추락으로 투신권 전체에서 이탈한 고객자금은 최근 10개월 동안 90조원. 환매자금 확보에 혈안이 된 양대 투신사는 주식시장에서 계속 매도 주문을 냈고 이는 주식시장의 장기하락세를 초래한 빌미가 됐다.

이미 연초에 3조원을 출자한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며 공적자금 투입을 공론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24일 현대투신운용의 불법 자금편출입이 다시 시민단체의 공격을 받고 투신권 구조조정을 바라는 기류가 확산되자 결국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금감위 관계자는 특히 “양사의 부실을 방치한 채 7월 채권시가평가제를 시행할 경우 자금시장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정상화되나〓공적자급 투입의 성패는 결국 시장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양사는 고유계정 부실규모 5조5000억원을 단번에 정리할 경우 경영정상화는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현재 수탁고 대비 1.5%선인 운용수수료만 받아도 연간 수천억원대의 영업이익이 생기는 반면 영업비용은 1500억원을 넘지 않아 수익구조가 확실하다는 것.

그러나 향후 주식시장이나 채권시가평가제의 추이를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주식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면 빠져나갔던 주식형 자금이 투신권으로 돌아오기 어렵고 채권시가평가제가 시행돼 채권형 수익증권의 수익률 변동이 ‘눈으로 확인될 경우’ 투신상품의 매력이 상당부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다.

공적자금 확보도 난제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25일 “현재 가용한 자금 7조원으로 충분하다”고 밝혔지만 5월초 나라종금 예금 대지급에만 3조4000억원을 사용해야 하고 서울보증보험 정상화에도 올해 3조원이 투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추가재원 마련은 정부의 골칫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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