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이란 보-혁 정면충돌 치달아

  • 입력 2000년 4월 26일 18시 57분


이란 대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개혁파 신문에 대한 ‘재갈 물리기’와 2월 총선결과 ‘뒤집기’ 등 보수파의 극단적 처방에 개혁파가 실력대결로 나가면서 두세력간의 오랜 갈등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 대학생 시위는 지난해 7월 개혁파 신문 ‘살람’ 폐간을 계기로 6일간 이어졌던 학생 시위이후 9개월 만이다. 79년 이슬람혁명이후 최대규모였던 당시 시위는 실패로 끝났다.

25일 시작된 대학생 시위는 개혁파 신문 14개를 무더기 폐간시킨 것이 직접 원인이다. 시위가 어디까지 번질지,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정국의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이번 보혁간 싸움은 이란을 극단적 혼란과 내분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학생 시위〓이란 대학생 수천명은 25일 테헤란대학에 모여 개혁파 신문 폐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남부 시라즈시에서도 대학생 3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열려 이 도시 17개 대학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하메단시 학생 1000여명도 시위에 나서는 등 대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란 사법당국의 개혁파 신문 폐간조치는 ‘쿠데타’라며 보수파의 권력유지 기도를 비난했다.

▽보수파의 공격〓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60)는 20일 설교를 통해 “몇몇 신문이‘적(敵)들의 기지’가 되고 있다”며 “특히 10여개 신문은 이슬람 혁명원리와 국기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격나팔이었다. 23,24일 법원은 개혁파 신문 14개를 폐간시켰다. 1개는 곧 복간했다. 이로써 개혁성향의 신문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관영 IRNA통신 간부를 비롯한 거의 모든 개혁성향 언론인들은 소환조사를 받았고 이중 3명은 구속됐다.독일 녹색당주최 회의에 참가한 개혁파 인사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개혁파가 압승한 2월 총선결과 번복조치도 취해졌다. 상원과 유사한 기구로 선거결과 최종승인권을 갖고 있는 혁명수호위원회는 최근 개혁파가 승리한 11개 선거구 선거결과를 무효화한데 이어 25일 1개 선거구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테헤란에선 30개 선거구중 29개에서 개혁파가 승리했었다. 보수파는 남부 케르만주 지로프트시의 총선결과도 무효화했다. 혁명수호위원회는 5월말 새의회 개원을 불과 한달 남겨놓고도 이들 선거구에 대한 결선투표 날짜조차 공고하지 않고 있다.

▽배경〓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는 혁명수호위원회 사법부 경찰 방송 등의 총공세는 2월 총선 패배이후 보수파가 더 이상 밀리면 ‘설자리’가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보수파에 선거결과는 충격이었다. 보수파의 오랜 아성이었던 의회(마츨리스)가 개혁파의 손에 넘어갔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290개 선거구 중 3분의 2를 개혁파가 차지했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57)이 행정부에 이어 의회마저 장악하게 된 것. 청년 지식층의 변화와 개혁욕구도 보수파에 위기감을 더해주고 있다.

▽전망〓지난주 테헤란에서는 혁명수비대가 하타미 대통령을 축출할 것이라는 쿠데타설이 나돌았다. 그래서인지 하타미 대통령은 22일 “사회 시스템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긴장을 야기해서는 안된다”며 대화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생과 언론인들은 “과연 하타미가 보수파 탄압에 대항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하타미의 온건한 태도를 보수파의 공세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계산된 행동으로 풀이하고 있다. 개혁파 언론인 아메드 자이다보디는 25일 테헤란대 강연에서 “학생들은 개혁파의 조직적 지원을 얻기 전에 단독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무원칙한 시위로 보수파에 반격의 기회를 주었던 뼈아픈 기억을 상기시킨 것.

공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파의 역공은 앞으로 상당기간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지지를 업고 변혁의 수레바퀴를 밀어붙이려는 개혁파의 대응도 이에 맞물려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양쪽 모두 이번 보혁대결에서 밀리면 끝장이라고 인식하는 데 있다. 그런 만큼 향후 이란 정국은 한치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돈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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