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스포츠]"짜증은 가라" 다운힐 즐기는 인라인 스케이터

  • 입력 2000년 4월 27일 11시 18분


"쏜다!"

남산 순환도로에 폭주족들이 나타났다.

언덕을 오르는 차와 등산객들 사이를 요리저리 빠져나가는 '광란의 질주'. 그러나 요란한 소음은 없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등뒤엔 부러운 시선만이 머문다. 폭주족의 정체가 바로 다운힐(Down Hill)을 즐기는 인라인 스케이터들이기 때문.

지난 23일(일) 아침8시 남산 국립극장앞. 인터넷 동호회클럽 레저월드(clubleisureworld.co.kr)의 인라인 동호회 회원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올 첫 다운힐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모두 7명. 이들은 리더격인 이재인(37)씨의 밴에 몸을 싣고 서울타워를 향했다. 차에서 내려 인라인 스케이트로 갈아신은 라이더들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잠시 후 시작될 '질주'를 준비했다.

드디어 준비 완료!

목표는 처음 출발한 국립극장앞 남산 순환도로 매표소.

"쏜다!"라는 구호와 함께 6명의 라이더들은 남산꼭대기에서 내달린다. 속도 더하기 속도. 바퀴로부터 전해오는 진동이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어느새 그들을 실은 인라인스케이트는 시속 60km를 넘어섰다. 라이더들이 느끼는 체감속도는 정상속도의 2배.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자동차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스케이트는 극한속도를 향해 무섭게 굴러갔다.

다음 코스는 S자 커브길. 언제 차가 산책로를 향해 치고들어올지 모르는 위험한 길. 다행히 차는 보이지 않는다. 6명의 라이더들은 마치 백설의 슬로프를 미끄러지는 스키어처럼 유연한 슬라롬으로 가볍게 난 코스를 통과했다. 싱그런 봄바람에 실려 날리는 벚꽃가루 사이를 가르며 약 3km의 남산순환도로를 라이딩 한지 불과 3분. 어느새 저 아래로 도착점이 보인다. 이제 남은건 마지막 직선 내리막길.

그러나 막판 스퍼트는 절대 금물. 6명의 라이더들은 일제히 힐(heel)브레이크를 작동.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아스팔트위에 희미하게 그려지는 6줄의 스키드 마크. 속도제어를 대부분 힐(heel)브레이크로 하는 탓에 브레이크 패드 소모량도 만만찮다. 일반 피트니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1년에 하나정도를 사용하는 데 비해 이들은 1,2달에 하나씩 바꿔줘야 한다.

일행들은 다음 라이딩을 위해 남산 꼭대기까지 올려줄 리프트(?)를 기다리며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처음 다운힐을 경험한 안병철(29)씨는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와! 이건 일종의 마약같네요. 중독되면 도저히 못 빠져나올 것 같아요". 처음 출발할 때 걱정반 두려움 반으로 "무사히 살아서만 내려오자"라는 생각했다는 병철씨의 이야기에 동료들은 1년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유쾌한 웃음으로 격려를 보낸다.

이들이 말하는 다운힐의 최고 매력은 역시'속도'.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는 속도까지 끝없는 가속. 위험을 감수한 정상속도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라이더들은 자유를 만끽한다. 이재인(37)씨를 비롯한 31세의 동갑내기인 김성욱,오병수,류관영,주현식씨 29세의 안병철씨는 모두 직장인. 빡빡하게 억매인 일상생활에서 쌓인 한주일의 스트레스를 일요일 다운힐을 통해 모두 날려버린다고. 이재인씨의 다운힐 예찬은 계속된다. "언덕을 내려올땐 오직 '나'만을 생각하죠. 세상에서 독립된, 그러면서 자유로운 '나'를 만나는 즐거움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드디어 리프트 등장.

이들이 말하는 리프트는 바로 빨간 소형승용차. 라이더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남산을 내려오는 동안 리프트는 반대쪽 남산 도서관→하야트호텔→타워호텔→국립극장을 지나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리프트를 운전하는 이미정(여)씨는 일방통행이라 동료들의 라이딩 모습을 보지못하는 게 서운한 표정이다. 그러나 자원봉사가 그리 싫지는 않은듯. 리프트는 라이더들을 다시 남산 꼭대기까지 올려줄 것이다. 그들은 다운힐의 반대 의미로 업힐(up hill)이라고 했다. 시속 40km에서 60km를 오가는 자동차에 매달려 언덕을 오르는 재미도 색다르다고. 차안에 2명,나머지 라이더들을 자동차 문밖에 매달린 채 리프트는 서울타워를 향해 또 달리기 시작했다.

박해식<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다운힐 이렇게 즐겨라▼

다운힐은 스키마니아들이 비시즌에 스키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타면서 널리 퍼졌다. 말그대로 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때문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하는 것은 기본. 다운힐을 즐기려면 기본적인 스케이팅 기술인 턴,브레이킹,균형잡기 마스터는 필수. 급경사와 급커브가 곳곳에 있는 일반 도로에서 다운힐을 즐기다보면 속도 조절할 일이 시도때도 없이발생한다. 그래서 브레이킹 기술은 힐 브레이크 뿐만 아니라 T스톱, 토우 드래그(toe drag)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안전장비 또한 필수. 헬멧은 물론 손목,팔꿈치.발목,무릎보호대와 함께 스크래치 패드(반바지처럼 옷속에 입는 보호장비)를 착용하면 찰과상을 방지할 수 있다.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땐 구르는게 최상의 방법.무릎과 팔꿈치의 보호장비를 이용, 2∼3바퀴 구르면 안전하게 멈출 수 있다. 이때목은 반드시 몸 안쪽으로 당겨야 큰 부상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다운힐을 시작하기 전에 코스를 자동차로 한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머리속에 코스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속도를 수시로 조절하면서 내려가는 것이 다운힐의 안전요령.

서울근교에서 다운힐을 즐길만한 대표적인 장소로는 남산 순환도로와 과천 서울랜드 동물원 앞길, 서울대학교 신공학관앞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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