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는 후에 난을 일으킨 안녹산(安祿山·?∼757)과 동시대 사람이다. 고선지가 안시(安西) 절도사를 할 때 안녹산은 허둥(河東) 등 3개 지역의 절도사를 겸임한다. 변경의 군사를 다루는 그 같은 요직에 외국출신인 고선지를 중용한 것은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당시 세계 제국이었던 당나라에 민족적 편견이 없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62년 만에 고국땅을 밟은 조남기(趙南起)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 부주석도 12세 때 할아버지 손을 잡고 만저우(滿洲)로 갔다고 한다. 18세 때 중국 팔로군에 입대한 그는 인민해방군의 최고 계급인 상장과 지린(吉林)성 부성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고선지와 조부주석을 같이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인생 역정에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조부주석이 오늘 12세 때 떠난 고향(충북 청원)을 반백이 되어 다시 찾는다고 한다. 그의 소회는 남다를 것이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 반세기가 넘도록 찾아가지 못하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만도 하다.
▷그러나 조부주석의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닐 것이다. 그저께 외교통상부장관 초청 만찬에 참석한 그는 산과 들이 유일한 고향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지만 그 산과 강의 모습도 옛날 그대로일 리 없다. 그는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입맛’이라며 어릴 적 먹던 김치를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에 와서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잊어버렸던 고국말도 많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 김치맛처럼, 고국말처럼 코 흘리며 맡던 고향 냄새도 어디에선가 그대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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