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는 현대투신의 유동성〓정부와 현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공언한 대로 현대그룹의 자금사정은 넉넉한 편. 9조원대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고 단기차입금 비중도 40%에 불과하다. ‘대우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풍부한 유동성을 현대투신에 집중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 계열사간 내부 자금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각종 규제장치가 작동되고 있는데다 최근 이 규제가 더욱 강화된 것. 재벌계열 투신운용사의 계열사 주식편입 비중이 25일 10%에서 7%로 축소된 것이 대표적 사례.
현대투신의 문제는 크게 자본금 결손과 유동성 위기. 97년 4월 국민투신의 부실을 떠안은 현대는 이듬해 또 다른 부실덩어리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힘겹게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대우사태를 맞았다. 올 초 대주주들의 8200억원대 증자 덕택에 자본금 잠식 규모를 가까스로 500억원대로 줄였다.
더 심각한 것이 ‘현대투신이 고객 자산에서 빌려 쓴 3조원대의 연계콜을 연말까지 갚는다’고 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부간의 합의. 신탁재산이 줄어든 터에 다른 자금을 꿀 수도 없어 사면초가에 몰렸다.
▽정부와 현대의 줄다리기〓현대의 지원요구는 “정부가 한남투신 부실인수시 약속했던 저리융자 지원을 지키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한남투신 인수시 2조원을 6%대의 저리로 지원받았지만 곧바로 저금리기조가 찾아오는 바람에 금리차를 통해 부실을 털어내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었다는 것.
현대투신은 28일 2003년 3월까지 자본금을 1조5000억원으로 늘리고 연계콜을 모두 없애는 경영정상화계획을 발표했다. 이창식 현대투신대표는 “솔직히 올해 말까지 연계콜을 해소하기는 불가능하다”며 “그동안 영업이익을 모두 부실탕감에 쏟아 넣은 만큼 이제는 정부가 도와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금리가 내려갈 위험을 안고 현대가 인수한 만큼 이제 와서 부실을 정부가 끌어안으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한다. 금융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장삿속’으로 부실업체를 인수한 재벌그룹이 끝까지 정부더러 부실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26일 “필요시 현대에 유동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후 정부 관계자들은 “현대의 자구노력이 전제”라고 입을 맞추고 있다. IMF와의 협약 준수시한을 8개월 남겨두고 조마조마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박래정·이철용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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