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벤처제품 수출 누가 좀 도와줘요"

  • 입력 2000년 5월 1일 20시 03분


국내에서 고성능 센서라이트를 판매해온 키트론의 황태진사장은 지난해 독일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무실을 방문해 제품 수요처 조사를 의뢰했다.

며칠 뒤 넘겨받은 전화번호를 보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추천받은 전화번호 10개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본 결과 회사의 상호만 키트론 제품과 관련이 있어 보였지 실제로는 고성능 센서라이트가 어떤 제품인지 알고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

황사장은 “우리같은 벤처기업의 제품을 해외에서 제대로 알아보는 중계자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괜찮은 중계자를 찾았다면 비싼 수수료를 내더라도 수출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사장은 미국에서도 답답한 결과만 얻어왔다. 시카고 현지 무역중계업자의 소개로 만난 4명의 바이어들은 황사장이 갖고간 센서라이트를 보고 무조건 조명기구나 전자제품의 부품으로 분류한 뒤 제조업체에 제품을 소개했으나 실물을 보자고 응한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휴대전화 배터리팩을 제작해온 ㈜미래테크는 98년1월 전파 수신이 뛰어난 안테나를 개발해 외국 컨설팅사에 수출을 의뢰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정보를 구하지 못했다.

미래테크 직원들이 지난해 직접 외국으로 나가 맺은 수출계약 액수는 고작 3000달러. 해외 주문에 따라 회사를 대량 생산체제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마땅한 ‘상대방’이 없어 실행을 미루고 있다.

신제품을 알릴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제품 정보를 알고 있는 외국 바이어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 업체의 최대 고민이다.

이 때문에 중소벤처업계에서는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무역 중계자나 외국 바이어를 찾지 못해 수출 길이 막혔다”는 푸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키트론과 미래테크는 모두 중소기업청이 미국 무역투자촉진단으로 선정한 벤처기업들이지만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하면서 비슷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도 해외 마케팅 실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판로 개척이 어려운 것.

최근 전원공급 장치를 새로 개발한 엘디케이전자㈜는 “오래 전에 개발한 자동차 경보장치는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간접 수출해왔으나 새로 개발한 제품은 어떤 방식으로 수출 길을 터야 할지 막막하다”고 밝혔다.

제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에 외국 바이어와 품질과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 KOTRA도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국내 진출 외국 컨설팅사에 수출 중계를 의뢰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외국 컨설팅사를 통한 수출도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이라는 것이 업체들의 반응. 최근 외국 컨설팅사를 통해 4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한 키트론의 황사장은 “제품 개발비와 생산원가를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계약을 했다”며 “우수한 제품을 생산한 벤처기업의 수출 길을 뚫어줄 다품목 소량 수출 전담기구나 업체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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