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도 FRB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들도 금리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는 갖고 있을지언정 입술조차 움직이지 않고 지켜볼 뿐이다.
미국 역시 FRB라는 중앙은행이 오늘날과 같은 독립적 위상을 확립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중앙은행의 중립적 역할이 필요한 것은 정부가 물가 금리정책까지 모두 결정할 경우의 정책왜곡 가능성 때문이다.
정책결정의 그같은 역할분담시스템 위에서 지난 10년간 미국경제의 저물가 안정성장을 견인한 최대의 공로자가 바로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이다.
우리가 미국의 선례를 빌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국은행법을 제정한 것이 50년 전 5월 5일이었다. 그 후 정부와 한은이 통화신용 정책권한을 놓고 격심하게 다툰 한은법 파동을 몇차례 거친 끝에 IMF에 떠밀려 현행 한은법으로 개정한 것이 1997년 12월 31일이다. 그해 금융개혁입법 추진과정에서 재정경제원(현 재경부)과 한은이 권한싸움으로 지새는 바람에 외환위기 대처에 실기(失機)했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다.
현행 한은법은 단기금리 결정권한을 한은의 정책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 부여하고 있다. 금통위원장을 재경부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바꾼 것도 한은의 독립성을 상당 폭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걸핏하면 단기금리 결정에 입김을 넣어왔다. 마침내 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까지 금통위의 5월중 콜금리 결정에 앞서 “콜금리 인상은 현재로선 적절치 않으며 한은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못질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은의 생각이 어떤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제수석이 자신의 권한 밖인 금통위 결정사항에 개입하는 행태가 문제다.
경제수석 재경부장관 금감위원장 등이 경제운용 전반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의 정책관이 언제나 절대선(絶對善)일 수 없으며 독선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래서 한은에 물가안정을 위한 중립적 정책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석 등 정부측은 이마저 무시하는 월권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전철환(全哲煥)한은총재와 금통위원들도 뒷전에서 웅성거리지만 말고 당당하게 제목소리를 내면서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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