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 입력 2000년 5월 7일 20시 18분


정치에서 ‘하향식(下向式)’ ‘낙하산’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뜻으로 통한다. 그것은 의사결정이 비민주적 억압적이며 사람 기용이 권위주의적이라는 나쁜 의미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유권자나 이구동성으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상향식 공천’이 이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3김씨 중의 한분도 벌써 오래전인 87년 대통령 선거 유세때부터 “나는 앞으로 위로부터의 정치 즉 ‘톱 다운’(top down)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의견을 모으는 ‘보텀스 업’(bottoms up)정치를 펴나가겠다”고 외치곤 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정치는 중앙당의 총재와 그 측근들 중심으로 펼쳐지고, 국회의원후보 지구당위원장이나 각종 지방선거의 정당후보는 밀실공천 낙하산공천이 대부분이었다. 정치지도자에서부터 중진 신인에 이르기까지 말로는 ‘상향식’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기실 실천은 없었고 실태는 그 반대였다. 그런 ‘하향식’정치의 적폐와 그것에 대한 원성은 마침내 지난번 총선에서 ‘국민의 손으로 정치를 바꾸자’는 시민단체의 낙선낙천운동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이제 또다시 정치 신인들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몇몇 지역에서 ‘상향식 정치’의 작은 싹이 돋는 것 같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서울 도봉을 지구당은 오는 15일 1만여명이 넘는 당원이 서울시 의원 보궐선거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민주당의 서울 동대문을 지구당에서는 6일 시의원 보궐선거 후보를 뽑기 위해 당비 1만원씩을 낸 대의원 300여명이 참석해 투표를 했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정당의 주인도 당원이어야 하고, 그 의사결정은 당원의 의사에 바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와 상반된 정당 패턴이 굳어버린 우리 풍토에서 이러한 ‘정치실험’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다소간의 잡음도 있고 비용의 문제도 없지 않겠으나 그것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새 시대에 걸맞은 정치에 대한 열망은 참으로 뜨겁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향식 공천과 신진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크로스보팅의 활성화, ‘교황식 국회의장’선출 등 개혁적인 제안에 대해 정당 보스나 중진들의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다고 들린다. 구각(舊殼)을 깨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시대적 요구다. 참신한 시도들이 정치개혁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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