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고성장 美경제 '속도제한' 필요한 때

  • 입력 2000년 5월 7일 21시 34분


미국 경제에 속도 위반 경고는 나타나고 있는가.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는 ‘속도 제한 경고’를 모두 무시했다. 놀랄 만한 경제팽창이 지속되는데도 인플레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업률은 떨어지기만 했고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만 해도 미국 경제에 대한 ‘다운사이징(구조조정에 의한 조직감축)’이나 기술부족 등을 지적하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어느 새 옛 이야기가 됐다. 96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의 밥 돌 후보가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를 공격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공급 경제학에 따른 세금 감면만이 경제를 회생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돌의 주장은 무색해졌다. 세금 감면 없이도 돌이 주장하던 수치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90년대 후반 들어 갑자기 높아졌다. 그 이유는 관련 업계가 정보기술을 효율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이 정보기술은 미국 경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놀랄 만한 일이다. 정보기술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는지 모르지만 미 경제는 고성장과 함께 인플레를 이겨내는 면역력까지 갖게 됐다.

95년에는 인플레 우려가 일부 나타나기도 했다. 80년대 초반과 90년대 초반처럼 실업률이 높아질 때만 물가상승률이 낮아졌고 70년대 후반과 80년대 후반처럼 실업률이 낮아질 때만 물가상승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는 실업률이 4% 이하이면서도 인플레 우려가 전혀 없는 믿기 힘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최근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 구인난이 계속되는 노동시장 사정 때문에 임금 인상 압력도 강하다. 최근 발표된 생산성 지수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게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이라면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수치들이다. 다만 ‘과속 경제’에 대한 속도제한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속도 제한 수준은 어디일까. 실업률은 현재 4.0%에서 4.5%나 5.0%로 올라갈 것이다. 경제성장률도 현재의 4% 이상에서 3%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속도제한론에 격렬하게 반발한다. 그들에게 나는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를 되돌아보자고 제안한다.

미 경제의 급격한 성장이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갑자기 높아져서 물가도 낮추는 등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된 것인가. 만약 주식시장의 이상 과열 등 수요 폭발에 의해 촉발됐다면 이런 종류의 경제성장은 분명히 인플레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과속해 온 미국 경제는 ‘속도 제한’이 필요한 것이다.

<정리〓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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