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벤처 기업의 한 사장은 최근 모일간지에 "벤처 기업은 노사관계법으로부터의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요지의 칼럼을 기고했다. 벤처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은 꿈과 이상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긴밀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심야에도 시간외 근무를 즐기는 벤처 문화는 노사 관계에서 예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법 적용에서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부터 벤처는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빠른 속도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중 있는 단어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벤처 투자 붐, 인터넷 붐, 가상 현실 등 매우 새로우면서도 영향력이 강한 사회 현상들을 만들어 낸 '정보화'는 여타의 사회 제도나 법률들을 초월하는 예외성과 특수성을 인정받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벤처라고 해서 노동법상에서의 예외를 적용받을 수는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유일한 덕목은 이윤이며 이윤은 종종 인류가 지금까지 합의해 온 어떠한 사회 제도도 초월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가 시장의 영역으로서만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제도와 법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형식상의 표준보다는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표준이 사회를 장악한다. 모든 사회적인 규칙도 시장에서의 경쟁으로 공정성이 가려지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각종 정보통신 정책들에서 볼 수 있다. 전자상거래에 관세를 매기지 말자는 무관세 주장이나 비즈니스 모델 특허에 대한 인정과 같이, 최소한의 경계들을 무력화시키는 무한 탈규제론자들의 목소리들이 드높다. 혹자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의 자유가 다른 이들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것이 자유일까? 무관세는 제3세계에 대한 제1세계 국가들의 횡포로 작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영업 방식에 대한 특허, 즉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특허는 단지 아이디어만으로도 독점권을 인정하면서, 발명가에 대한 보상과 기술의 공유라는 특허법 본래의 소박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이 이 뻔뻔하고 거침없는 진군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사례 하나를 살펴 보자. '군가산점' 문제를 둘러싸고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졌던 소동 이야기이다. 애초 '평등한 노동권'이라는 핵심 쟁점이 남성 대 여성이라는 '성대결'로 변질된 것은 언론들이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성대결을 인용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남성 이용자 대 여성 이용자의 숫자가 80:20인 상황에서 일방만이 존재했을 뿐, 사실 '대결'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성들은 전형적으로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가하는 배타적 공격성을 드러내면서 여성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지목하였다.(여성들은 지목되었다.) 군가산점제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찬성하는 여성들과 소수 남성들의 글은 수십 개의 반대글 속에 드문드문 게시되었다가 그나마 무수한 욕과 협박 세례를 받고는 모두 사라졌다. "너 밤길 조심해라" "우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여자들을 모두 정신대에 보내라"는 명백한 협박과 언어 폭력들이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지금의 정보화는 마치 이러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율이라는 이름의 탈규제와 무한 경쟁의 논리는 출발선이 다른 이들을 철저하게 낙오시키면서 쟁취하는 야만의 자유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 제동을 걸 것인가?
가상 공동체에 대하여 글을 쓴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가상 공동체의 다양한 가능성이 무제한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네티켓'(netiquett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의'라는 사회적인 약속과 공공 영역을 제동 장치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정보화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탈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사회적 약속이며 공공성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보 기본권'을 하나의 중요한 공공 영역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세계인권선언'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에 대한 지침이 되어온 것처럼 '정보 기본권'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정보화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획득해야 할 권리를 분명히 규정하고 결국 정보화가 인간의 얼굴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보 기본권은 크게 개인적·자유권적 주제와 사회권적 주제로 나눌 수 있다. 자유권의 영역에 속하는 주제들은 한 정보 주체가 정보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알 권리', '알릴 권리', '알리지 않을 권리', 즉 정보 공개·공유,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을 들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권적 주제로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공공 접근권(public access)이 있다.
이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기술에 대한 예외성의 논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정보화에 대한 예외성 주장은 사실 상당 부분 기술에 대한 예외성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술은 사회적인 이해 관계와 무관하며 좋은 방향으로만 진화한다는 관점은 현대 사회에 계속 팽배해 왔으며 최근의 신경제 이론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자율적인 발전 경로와 그 사회적 예외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기술에 대한 정책 결정을 기술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는 결과를 낳는다. 상황에 대한 판단 역시 실질적이라기 보다는 이해 관계에 따라 좌우되면서도 그 이해 관계의 사회적 맥락은 '객관성'이라는 포장 밑으로 숨는다. 정보화에서 대표적인 사례로는, '해킹'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조장되는 공포심, 청소년과 음란물 사이의 영향 관계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그로 인해 자연스레 연결되는 통제 논리를 들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해킹이 어떤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회적으로 검토해본 경험이 없으며, 음란한 (사이버) 표현물이 청소년에게 실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그런데도 논쟁이 진행되는 구도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판단과 개입이 아니라, 해킹이나 음란물과 같은 것에 대한 통제와 결정을 한시바삐 기술적으로 잘 아는 누군가에게 위임하자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보화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복잡한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특히 국민국가가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조정과 공적인 기능이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 충돌하면서 점차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에 대한 주장은 규제 완화, 민영화, 그리고 공공 기능의 축소와 같은 정보화의 지배적인 경향과 충돌을 빚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들이 정보화의 다는 아니다. 오히려 '정보화'에 정해진 모양과 결말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예언 속에 나오는 정보화가 아닌 현실 정보화는 수많은 논쟁 거리들을 담고 있으며 격렬한 투쟁 속에서 그 모양이 빚어질 것이다. 정해져 있는 미래로 달려가는 집단 최면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논쟁 속으로 뛰어들어 정보화를 '사회적으로 구성'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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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경/진보네트워크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