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통신 관련 벤처업체들은 중국진출은 어지러울 정도다. 한글과컴퓨터,한통하이텔,인터파크,텔슨전자 등 제법 규모가 큰 업체에서 불과 몇 억원짜리 자본금회사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승전보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유야 많다. 하지만 가장 큰 부진원인은 '묻지마' 진출이라는 점이다. 진출기업들이 믿는 것은 오로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잠재성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설마 하지만 실제가 그렇다.
중국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사장을 직접 만나보면 더욱 한심해진다. 지금 중국의 정보통신시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돼 있고, 어떤 사업을 해야 돈이 되고, 누구와 손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장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지난 2월 대한상의에서 중국진출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내 벤처업계의 선두주자라할 한글과컴퓨터의 정지준 부사장이 던진 솔직한 한 마디는 참석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다. "저는 중국시장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리 회사가 이정도면 다른 회사는 어떻겠습니까" 정 부사장은 이 발언직후 한컴의 자회사인 한소프트차이나를 통한 중국진출을 공식화했다.
국내 중국전문가들은 지금 방식으로 벤처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한다면 현지시장에서의 생존확률은 0%라고 지적한다. 호기롭게 중국진출을 외치지만 '백전백패'가 눈앞에 뻔히 보인다는 말이다.
지금 벤처업체들의 행태는 한중수교가 이뤄진 90년대 초반 한국의 굴뚝기업들이 차이나드림을 꿈꾸며 뒤질세라 중국땅을 밟았던 때와 다를 게 없다는 설명이다.
베이징에서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덕현 소장은 "국내 벤처업체들의 중국진출이 현지에서 성공하겠다는 목적보다 실제로는 기업가치를 올리기위한 국내 홍보용인 경우도 많다"며 "중국진출소식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정보통신산업동향= 4300만명에 달하는 휴대폰 가입자. 매년 2배씩 늘어 2002년에는 5천만명에 달할 인터넷인구. 그러나 아직 IT에 관한한 '처녀지'라고 불러도 좋을 무궁무진한 시장. 한국 벤처기업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한국의 정보통신부에 해당하는 중국 신식산업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올해 중국PC판매량은 6백만대,매출은 26조원에 달한다. 설비,소프트웨어 등 전체 IT시장규모는 15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특히 중국지역의 특성상 모바일시장은 급팽창 중이다. 정부의 입김으로 기업경영스타일이 일사분란한 재편이 가능하다는 점은 오히려 한국보다 빠른 B2B시장의 성장성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촌에는 40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고 이중 절반이상이 IT관련 벤처기업이다. 또 베이징 거리의 전광판은 온통 닷컴의 광고들로 가득차 있다. 지금 중국경제의 화두는 'WTO'와 'IT벤처'다.
◆한국벤처기업의 진출동향=지난해 이후 이미 지사를 설립했거나 진출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기업만 1백여개에 달한다. 노트북가방을 둘러멘 채 베이징공항을 빠져나오는 한국의 젊은 벤처사업가는 매일 목격되는 흔한 모습이다. 사업영역도 다양하다. 교환기나 광중계기같은 장비수출,소프트웨어, 전자상거래,단말기, 홈쇼핑, 벤처캐피털, 심지어는 PC방 사업도 있다. 정부도 국내기업의 중국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시장의 과당경쟁과 시장성한계는 당분간 중국진출바람을 더욱 부채질할 전망이다.
◆바람직한 진출전략=중국시장은 깃발만 먼저 꼽으면 자기땅이라는 '무주공산'의 환상을 버려야한다. 성공하기는 한국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90년대 초반 한중수교이후 줄곧 중국과 한국기업관련 업무를 벌여오고 있는 차이나리서치 배우성 사장은 중국진출 3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컨소시엄을 구성하라. 한국의 진출규모는 MS,인텔,노키아 등 미국 유럽의 진출기업에 비하면 말그대로 새발의 피다. 개별영세규모로는 상담조차 성사시키기 어렵다. 그나마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 장비업체,창투사,마케팅업체 등이 한꺼번에 묶여야 제휴체결,사업의 성공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둘째 철저히 준비한 다음 진출하라. '묻지마' 진출은 절대 피하라는 말이다. 현지의 IT산업정책, 사업관행, 현지 관리인에 대해 준비없이는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이라고해서 중국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절대 없다. 셋째 중관촌에 들어가라. 중관촌에는 IT관련 모든 정보,인력이 있고 심지어는 중국정부의 우대정책까지 있다. 더욱이 중관촌의 활동은 이제 초기단계여서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광현<동아닷컴 기자>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