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존 말코비치 되기]기발한 상상·아이디어에 감탄

  • 입력 2000년 5월 8일 19시 47분


어느 날 갑자기 할리우드에 나타난 두 젊은이의 상상력은 그 끝을 모르는 것같다.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라는 괴상한 제목의 영화를 보고 나면, 둘 다 이 영화가 첫 작품인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과 감독 스파이크 존즈의 상상력 무한 질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보통의 영화 이야기와 현실 세계의 논리를 가뿐히 뛰어넘은 ‘존 말코비치 되기’는 하나씩 떼어내면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뒤섞으며,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는 새로움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논쟁적인 내용의 인형극 때문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형극 공연가 크레이그(존 쿠색 분)는 생계를 위해 7층도 8층도 아닌, 7½층에 있는 괴상한 회사에 취직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 두 가지 발견을 하게 된다. 하나는 “숙명적인 만남”이라고 느낀 맥신(캐더린 티너)에 대한 사랑, 또 하나는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크레이그는 이제 그 전처럼 살지 못한다. 말코비치가 되어보는 경험을 한 뒤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 그의 아내 라티(카메론 디아즈)도 그 전처럼 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는 아이디어는 때론 우습고 신랄하고, 또 때로는 심각하고 슬픈 이야기의 원천으로 사용된다. 이 영화는 크레이그가 “내가 나일까, 말코비치일까”를 자문하는 정체성의 문제에서 시작해 ‘합체 로봇’처럼 말코비치의 인격까지 갖게 된 라티가 겪는 다중 인격, 몸을 옮겨다니며 영생하는 윤회의 문제까지 종횡무진 건드리며 속도 빠르게 치닫는다.

말코비치가 직접 자기 머릿속으로 들어가 만나는 광경, 결박당한 라티를 보면서 침팬지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라티를 돕는 장면 등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기발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저분한 몰골로 등장한 존 쿠색과 카메론 디아즈, 자신을 패러디한 찰리 신의 연기도 좋지만 누구보다 이 영화의 귀중한 자산은 존 말코비치다. 자기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에서 머릿속을 강탈당하는 배우로 등장한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하며 기꺼이 조롱의 대상이 됐다. 아쉬운 것은 이 영화를 서울의 7개 극장(명보, 피카디리, 시티, 녹색, 동숭, CGV강변, 메가박스 씨네플렉스)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 18세 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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