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국회의원 당신들

  • 입력 2000년 5월 8일 19시 47분


미국의 시카고 시내에 오래 전 ‘나쁜 공직자(선출직)는 선량한 시민의 기권으로 뽑힌다’는 광고가 나붙은 적이 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부추기는 경구다. 그렇다면 사상 최저의 투표율 57.2%로 구성되는 우리의 16대 국회의 품질은 어떨까. 찜찜한 기분이다. 정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소리가 드높지만 기권은 점점 늘고 있으니 악순환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악마의 사전’에서 ‘정치’를 찾아보면 ‘사리사욕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반어적인 비아냥이지만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정의(定義)다. 이런 식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희화화(戱畵化) 비아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다. 윈스턴 처칠은 ‘정치가란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는 재능, 거기에 그것이 빗나가면 둘러댈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치인 不信 위험수위

‘정치인이란 시냇물이 흐르지 않아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따위의 인간들’이라고 한 것은 소련 총리를 지냈던 흐루시초프였다. 영어 표현에 ‘정치가란 정치꾼으로 성공해서 죽은 경우에 붙이는 이름이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일본 총리를 지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국회는 동물원’이라고 경멸하고 ‘국회의원이란 원숭이 산의 원숭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란 그만큼 논란거리이며, 정치인이란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기는 해도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 비판은 위험수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회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행정가나, 냉소주의적 정치 비판론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나서서 정치를 걱정하고 심지어 백해무익(?)한 것처럼 인식하는 사태는 심각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직업을 수행하면서 제 보스와 제 정당, 제 정파를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공무원이건 회사원이건 급여 보수를 받는 이는 그것을 주는 측을 위해 중립적 공적으로 최선을 다해 일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은 생계를 부양해 주는 국민을 등지고 ‘제 볼일’에나 급급해 하는 직업인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정당에 나가는 국고보조금이 99년 한 해만 해도 251억9000만원에 이른다. 이번 선거 때는 선거 공영이라 해서 국민세금에서 나간 선거운동비가 360억원이다. 후보자공보 벽보 사무원수당 등이 213억원, 우편물발송비 합동연설비용 등이 147억원, 이것을 합치면 그렇게 된다. 의원 한명이 한해 받는 세비는 평균 6892만원, 전체 국회의원이 206억원의 세금을 쓴다. 거기에 보좌관 급여도 의원 1인당 1억4000여만원 꼴로 총 421억3300만원을 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국민’보다는 ‘총재’주변에서 개인에게 충성하고, 정치 자금이라는 이유로 수천만원씩 별도로 뜯어 쓰다 검찰에 불려가기 일쑤다. 국회에서는 아이들 교육에도 지장을 줄 정도로 치고받는 욕설 고함 싸움질이 예사다. 세계 어느 나라 의사당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크고 작은 이슈에 관해 실체와 의미에 관계없이 정파의 이해득실에 따라 죽기 살기로 덤비고 정쟁으로 소일한다.

정당(party)은 라틴어의 어원이 보여주듯 전체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분이다. 나라가 먼저이고 정당은 나중인 것이다. 그리고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이고 의원이 소속하는 정당만의 대표가 아니다. 의회의 영어 팔러먼트(parliament)는 ‘토론 담판’(parley)에서 비롯한 것이며 콩그레스(congress)역시 ‘함께 나아가다’가 그 뿌리라는 것을 보아도 의원의 역할은 자명하다.

▼국민위한 복무자세 필요

지금처럼 ‘국회의원 당신들!’하는 질타나 들어서는 안된다. 막스 베버는 그의 명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밝히고 있다. “정치란 정열과 판단력을 구사하면서 딱딱한 판자에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이다…어떤 사태에 직면해도 단호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칠 수 있는 인간, 그런 인간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다”고. 16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보스정치와 패거리 쟁패, 그리고 비민주적 정당구조의 틀을 깨고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의원 본연의 자세로 굳건히 서야 한다.

<김충식 논설위원 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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