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에는 이미 20년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학 연구가 있습니다. 또 뉴욕 일대의 중국인과 일본인도 한국의 불교, 특히 원효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지요. 8일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때에도 말했지만 ‘홍익인간’이라는 한국 고유의 이념과 함께 원효의 화쟁(和爭)정신은 남북한의 화합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당시 대립하고 있던 수많은 불교종파들의 사상을 융화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다민족 사회인 미국의 인종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개인적인 관심에 따라 접근은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미국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원효의 사상은 어려워서 미국에서는 소수의 연구자들만이 접근 가능할 겁니다. 진행하고 있는 번역 작업은 그 사상을 좀더 널리 알리려는 것입니다.”
케니 총장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를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으로 도약시킨 인물로 꼽힌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 집권 2기 연방 교육부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으며 학계에는 ‘행동하는 여걸’로 잘 알려져 있다.
―유대인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유대교 신자로서 불교를 이해하거나 원효학회장이 되는 데 이념적 또는 정신적 갈등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갈등은 없었습니다. 사촌과 조카도 유대교에서 불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고 불교 관련 책도 읽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불교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서양의 전통적인 종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정치적인 일보다는 정신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스토니브룩대에서 불교 강좌를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국의 백인학생들이고 특히 유대인이 많습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종교 대신 자기 수행을 중시하는 불교가 서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대인들이 불교를 많이 찾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원효사상을 전공한 우리 대학 한국학과의 박성배교수에 따르면 형이상학적인 것보다 일상의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유대교와 불교는 비슷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한 불교학자나 아시아학 연구자 중에는 유대인이 많습니다. 특히 유대인이 많이 사는 뉴욕주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96년 한국 송광사에서 예불에 참여해 108배를 올렸습니다.”
―얼마 전 아드님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보다 깨달음의 문제를 중시합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삶 자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드님을 잃은 슬픔을 겪으며 불교의 사상에 대해 느끼신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들은 랍비(유대교 성직자)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주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케니총장은 금방 눈물을 흘렸다.
―아드님 얘기를 꺼내지 말 걸 그랬습니다. 총장께서는 동서문화의 교류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한국인에게 친근감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새뮤얼 헌팅턴처럼 문명간의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다른 문명과 맞서야만 미국이 강대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도 미국의 일각에서는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합니다. 이러한 미국에서 유대인이자 여자로 태어난 나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문제로 고민해 왔습니다. 흑백 갈등과 같은 어려운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양성의 공존이 바로 미국의 특성입니다. 특히 뉴욕은 미국의 주류인 백인이 아닌 인종이 반을 넘습니다. 롱아일랜드 동쪽에 있는 스토니브룩 일대는 백인사회지만 뉴욕시와 인접해 있어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와 접하며 문화의 다양성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총장 취임 후 한국학을 포함한 아시아학 관련 사업을 많이 추진해 오셨습니다. 덕분에 87년 설립된 이 대학의 한국학과는 이제 미국에서 한국학 연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곳이 됐습니다.
“뉴욕의 경우 학생들을 봐도 동서양 양쪽에 뿌리를 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소프트업계 2위인 컴퓨터어소시에이트의 찰스 왕 회장이 몇 년전 미국 공립대 기부금 사상 최대 액수인 2500만달러를 스토니브룩대에 기부하기도 했지요.
“그 기부금으로 아시아아메리카문화센터(Asian-American Cultural Center)를 건축중입니다. 왕회장은 2500만달러를 추가로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2002년 완공 되며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회의실 정원 휴게실이 갖춰집니다.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대화하고 즐기며 서로를 알아가는 공간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한국학 관련 프로그램도 여러 가지지만 특히 한국 관련 서적의 발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한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내용을 담은 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이와 아울러 미국 교과서에서 한국에 대해 잘못 서술된 내용을 바로잡는 일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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