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진정한 만남'

  • 입력 2000년 5월 10일 19시 10분


우리에게도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다. 50년 헌정사에서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장기집권 30년을 제하고 나면 20년 만에 4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니 외양만으로는 민주주의의 틀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 사람은 과도기의 ‘명목상 수반’을 넘지 못했고, 두 사람은 반란과 뇌물수수 등으로 단죄되었으니 비록 사면복권이 됐다고는 하나 사실상 전직 대통령의 대접을 받기조차 민망한 처지다. 그러고 보면 IMF위기의 책임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해도 그나마 ‘유일한 전직’은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이라고 하겠다.

▷그런 YS가 엊그제 현직인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만났다. 2년2개월만의 만남이라니 전현직 사이에 파였던 골이 깊고도 길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여러 정치적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반목과 대립으로 치닫던 전현직 대통령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한 번의 만남으로 등돌렸던 시간들이 일시에 채워질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는 법이다.

▷1970년대 이후 DJ와 YS는 ‘경쟁적 의존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른바 ‘양김시대’는 좋든 싫든 우리 현대사의 큰 축이었다. 두 사람은 민주화투쟁에는 손을 잡다가도 권력을 잡을 기회가 올 때면 돌아섰다. 민주화를 위한 공동투쟁과 민주화를 더디게 한 분열이란 이율배반적 공과(功過)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87년의 분열은 그 근본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영호남 지역감정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지역감정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전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것은 그 모습만으로도 지역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으나 진정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자주 만난다면 우리 국민은 머잖아 명실상부한 2명의 전직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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