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 입력 2000년 5월 12일 18시 49분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천규석 지음 / 실천문학사

지난 어린이날 하루 전에는 200명의 어린이들이 농림부장관과 해양수산부장관을 상대로 새만금 간척사업을 취소하라는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진기한 일이 벌어졌다. 진기하다 했으나 처음 일어난 일이니 진기한 것이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환경이란 본시 미래 세대로부터 우리가 잠시 빌려쓰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잘 키워주지는 못할 망정 망가뜨리지는 말고 돌려줘야 한다.

끊임없이 개발하지 않으면 진보할 수 없다는 논리는 적어도 그것이 내 땅일 때 가능하다. 빌려쓰는 주제에 도대체 누구를 위한 진보란 말인가. 땅주인은 진보를 원하지 않는다. ‘옹골진 농사꾼’ 천규석도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고 일깨운다. 나는 이 책을 벌써 몇 번째 읽고 또 읽고 있다. 그의 말은 구구절절 모두 옳은 말이다. 그런데 대학 강단에서 생태학을 가르친답시고 떠들고 있는 나 자신이 연신 부끄럽기만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너무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 간의 싸움도 이처럼 엄청나지는 않았다. 그는 단순히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일변도의 국가정책이나 경제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뭇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그 자체와 씨름을 하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승리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내 가슴이 답답한 것일까.

인간은 어차피 환경을 파괴하게끔 진화한 동물이다. 인간은 지구의 역사상 가장 기가 막히게 환경을 잘 활용한 동물이다. 그래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노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집단이 그리 크지 않았을 때에는 구태여 환경을 보호하며 살 필요가 없었다. 그런 시간 낭비를 하느니 더럽혀지면 그냥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더 유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는 패총이 바로 그 시대 사람들이 이사 가며 버리고 간 쓰레기더미가 아니던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땅을 팔라고 조르는 백인들에게 시애틀이란 이름을 가진 인디언 추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전해온다. “땅이란 하늘이 우리에게 잠시 빌려준 것일세. 내 것도 아닌 물건을 어찌 당신에게 팔 수 있겠오?” 그 하늘이 다름 아닌 우리 다음 세대다. 천규석의 처절하리만치 철저한 두레공동체 정신과 지속가능한 생활태도는 “이 지구 행성 위에서 인간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미래까지 살아남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외통수 운명”이다. 그는 자꾸 우리더러 “빠를수록 에돌아 가라”지만 우린 왜 이렇게 죽음의 발걸음을 재촉하기만 하는 것일까?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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