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의원 외유와 도덕성

  • 입력 2000년 5월 12일 19시 27분


이달말로 임기가 끝나는 제15대 국회의원 3명이 ‘예산제도 시찰’ 명목으로 9일부터 미국 브라질 캐나다를 여행중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3당 간사인 민주당의 조홍규(趙洪奎), 한나라당의 박종근(朴鍾根), 자민련의 구천서(具天書)의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부부동반으로 나갔고 이 외유에는 약 6000만원의 국회 예산이 들어갔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들중 조, 구 두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낙선해 예산제도를 보고 배워 오더라도 16대 국회에는 사실상 반영할 길이 없다.

지방의원들의 외유도 ‘대목’이라도 맞은 듯이 붐이다. 경북도의원 13명은 1인당 540만원의 예산을 들여 12박13일 일정으로 독일 등 유럽 7개국을 여행하기 위해 11일 출국했다. 현지 지방의회와 상하수도시설을 둘러본다는 게 공식 일정이지만 명승지 방문 등의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0일에도 경북도 다른 의원팀 13명이 사무처 직원 2명을 대동하고 중남미로 떠났다. 부산시의회 태백시의회 수원시의회 의정부시의회 의원들도 비슷한 일정으로 다녀왔거나 출국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시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효율적인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 견문을 넓히는 것,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을 쓰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의원들의 여행이 대부분 몰려다니며 유람을 즐기는 낭비성 외유라는 데 문제가 있고, 그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의원들에 따라서는 현지에서 비상식적인 태도로 교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하면 귀국 후 시찰보고서도 제대로 내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는 보도다.

‘참여자치 전북 시민연대’는 9일 지난 한해동안 전북의 시군 지방의회에서 해외연수 명목으로 10억여원(해당 의원 260명)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문국이나 여행지가 비슷하고 일정도 관광 위주이며, 전문성과는 거리가 있는데도 매년 같은 공금을 소비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시찰이나 ‘해외 연수’를 빙자해 연례적으로 예산을 축내며 현지 대사관의 일손이나 빼앗는 관행은 이제 끝낼 때도 되었다. 국민은 외환위기 이래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피눈물을 흘리며 구조조정의 아픔을 견디고 있는 마당에 혈세를 이런 식으로 낭비할 수 있는가.

세금으로 ‘낙선 위로 여행’이나 다니는 것이야말로 공직의 도덕성 붕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외유 낭비’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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