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채 파동과 투신구조조정으로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투자자 불안감이 여전하고 관행처럼 유지된 은행과 투신사간 신뢰고리가 끊어져 270조원에 달하는 신탁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것. 신탁시장 붕괴는 기업자금줄이 끊겨 중대한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30兆원 은행권으로 이탈▼
▽은행에는 돈이 쌓이는데 투신‘곳간’은 축나〓한국은행은 4월말 은행권 총 수신고가 389조9609억원으로 올들어 24조6246억원 늘었다고 집계했다. 이 중 안전한 정기예금에는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27조5428억원이라는 새돈이 들어왔다.
반면 투신사 장기공사채펀드와 단기공사채 상품은 각각 33조1344억원과 8조2196억원이 감소해 무려 41조3540억원이 줄었다. 같은 기간 하이일드펀드와 후순위채(CBO)펀드 등 주식형으로 분류되는 쪽으로 11조2442억원이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30조원의 돈이 투신에서 은행으로 몰려간 셈.
▼마이너스수익 불신 부채질▼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신뢰 상실〓투자자들의 ‘은행선호-투신기피’ 현상은 실적배당상품에 대한 불안감 때문. 대우채 파동으로 투자자들이 위축된 상태에서 한투 대투 구조조정, 현대투신 파문 등이 ‘투신사〓원금손실’이라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증시침체로 실적배당상품인 주식형펀드와 뮤추얼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도 신탁시장 불신감을 부채질하는 요인. 또 7월 채권시가평가제도 전면도입은 ‘제도변경으로 도대체 내 돈이 어찌될지 불안하니 일단 돈을 빼고 보자’는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기업 자금조달 어려워져▼
▽은행-투신 자금선순환 고리 끊겨〓예전에는 은행에 들어간 돈이 자연스레 투신으로 재유입됐지만 지금은 이 연결고리가 아예 끊겨 버린 것이 문제. 은행 자금담당자들이 투신사를 ‘자칫하면 물릴 수 있는 금융회사’로 보는 인식 때문. 신대식(申大植)한국투신 이사는 “예전에는 은행이 여유자금을 투신에 넣어 고금리를 챙겨갔지만 지금은 은행들이 금고에 둘망정 투신에 돈을 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이익을 분배해주는 투신사들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도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쓰기가 하늘의 별 따기.
▼"늑장대응땐 또 환란" 경고도▼
▽투신 신뢰회복, 당국 구조조정 일정 명백히 해야〓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연계콜 문제와 대우채 및 비대우채 부실 등 난제가 산적한 투신사에 공적자금을 넣는다 해도 시장이 불안해하는 게 문제”라며 “투자자들에게 부실이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당국이 시급히 이해시켜야 신탁시장이 회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철호 대한투신 이사도 “채권시가평가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시장참가자들의 이해부족으로 신탁시장 붕괴로 확산되고 있다”며 “정책당국이 은행과 투신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공적자금 투입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사장은 “투신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늑장대응했다가는 우리나라가 다시 IMF체제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경고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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