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탁시장 붕괴 조짐/"원금 축날라" 投信기피 심화

  • 입력 2000년 5월 16일 19시 11분


여유자금이 넘치는 은행들마저 투신사에 돈 넣기를 꺼리고 있어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 창구인 신탁시장이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우채 파동과 투신구조조정으로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투자자 불안감이 여전하고 관행처럼 유지된 은행과 투신사간 신뢰고리가 끊어져 270조원에 달하는 신탁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는 것. 신탁시장 붕괴는 기업자금줄이 끊겨 중대한 금융시장 불안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30兆원 은행권으로 이탈▼

▽은행에는 돈이 쌓이는데 투신‘곳간’은 축나〓한국은행은 4월말 은행권 총 수신고가 389조9609억원으로 올들어 24조6246억원 늘었다고 집계했다. 이 중 안전한 정기예금에는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27조5428억원이라는 새돈이 들어왔다.

반면 투신사 장기공사채펀드와 단기공사채 상품은 각각 33조1344억원과 8조2196억원이 감소해 무려 41조3540억원이 줄었다. 같은 기간 하이일드펀드와 후순위채(CBO)펀드 등 주식형으로 분류되는 쪽으로 11조2442억원이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30조원의 돈이 투신에서 은행으로 몰려간 셈.

▼마이너스수익 불신 부채질▼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신뢰 상실〓투자자들의 ‘은행선호-투신기피’ 현상은 실적배당상품에 대한 불안감 때문. 대우채 파동으로 투자자들이 위축된 상태에서 한투 대투 구조조정, 현대투신 파문 등이 ‘투신사〓원금손실’이라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증시침체로 실적배당상품인 주식형펀드와 뮤추얼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도 신탁시장 불신감을 부채질하는 요인. 또 7월 채권시가평가제도 전면도입은 ‘제도변경으로 도대체 내 돈이 어찌될지 불안하니 일단 돈을 빼고 보자’는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기업 자금조달 어려워져▼

▽은행-투신 자금선순환 고리 끊겨〓예전에는 은행에 들어간 돈이 자연스레 투신으로 재유입됐지만 지금은 이 연결고리가 아예 끊겨 버린 것이 문제. 은행 자금담당자들이 투신사를 ‘자칫하면 물릴 수 있는 금융회사’로 보는 인식 때문. 신대식(申大植)한국투신 이사는 “예전에는 은행이 여유자금을 투신에 넣어 고금리를 챙겨갔지만 지금은 은행들이 금고에 둘망정 투신에 돈을 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이익을 분배해주는 투신사들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도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쓰기가 하늘의 별 따기.

▼"늑장대응땐 또 환란" 경고도▼

▽투신 신뢰회복, 당국 구조조정 일정 명백히 해야〓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연계콜 문제와 대우채 및 비대우채 부실 등 난제가 산적한 투신사에 공적자금을 넣는다 해도 시장이 불안해하는 게 문제”라며 “투자자들에게 부실이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당국이 시급히 이해시켜야 신탁시장이 회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철호 대한투신 이사도 “채권시가평가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는 바람에 시장참가자들의 이해부족으로 신탁시장 붕괴로 확산되고 있다”며 “정책당국이 은행과 투신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공적자금 투입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사장은 “투신권 문제를 이런 식으로 늑장대응했다가는 우리나라가 다시 IMF체제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경고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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